계급정년제가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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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일 오치성 내무는 『요즘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경찰관들의 비위사건과, 그 중에도 특히 간부경찰관이 관련된 독직사건들은 계급정년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라고 말하고, 곧 그 개정안을 마련할 방침임을 밝혔다 한다.
경찰공무원법이 제정됨으로써 처음으로 도입했던 계급정년제로 말미암아 70년에 총경 7명이 계급정년으로 퇴직한 것을 필두로, 오는 9월에는 36명이, 내72년에는 70명의 총경이 각각 계급정년퇴직키로 돼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년을 앞두고 이들 간부경찰관들이 승진운동에 골몰하거나, 퇴직 후에 대비하기 위해 부정부패에 휩쓸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생각은 비단 오 내무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경찰공무원법에서 계급정년제를 채택한 이유가, 군인과 마찬가지로 경찰행정간부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경찰관들의 사기를 앙양하고, 전반적으로 경찰간부를 젊은 「엘리트」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였고 ,그런대로 어느 정도의 실효를 거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최근 잇따라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경찰비위사건 속출 때문에 성급히 계급정년제자체의 존폐문제를 들고 나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조급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우리 경찰의 사기가 크게 추락되고, 그 기강이 말이 아닐 정도로 해이하고있는 이유는 단순히 계급정년제때문이라기 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성의 소치라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여, 오늘날 우리경찰은 국민의 생명·재산보호자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한 지위를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이 제구실을 못하듯이 국민의 생명·재산을 철저하게 지켜주기 위한 파수병으로서의 경찰이 그 예산이나 편제 또는 처우상에 있어서는 물론, 타국가기관과의 상대적인 권위에 있어서 조차도 심한 열등의식을 불식하지 못하여 스스로 소금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의 깊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관들의 이와 같은 열등의식 내지 자기비하현상을 가져오게 한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라 할 수 있다. 건국 이래 6·25동란을 거쳐 4·19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반공 사찰면에 있어서나, 그 밖의 범죄수사 능력에 있어서나, 정평이 있을 만큼 강력했던 우리 경찰은 4·19를 고비로, 한꺼번에 독재정치의 앞잡이로서 민중의 호된 지탄을 받아 민주당정권당시에는 그 사기가 땅에 기어들만큼 저하되었던 것인데, 5·16이후에는 또 특히 군과의 사이에 상대적 지위저하를 강요받음으로써 전반적이며 만성화한 사기저하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71년6월 말 현재 전국의 경찰관수는 치안총감 이하 순경까지를 통틀어 4만여명으로서, 이는 제3공화국수립당시에 비해 약41%가 증가했으나, 동기간 중의 각종 범죄증가율 2백74% 나 각종 재해·사고증가율(일예를 교통사고 증가율에서 보면, 약3백41%)에 비하면 경찰이 그 인원상으로도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말단 경찰관의 처우가 고작 2만원정도에 머무르고, 일선지·파출소의 운영경비가 월액 고작 1만원정도에 머무르고있는 상황하에서 이들이 각종 민폐를 끼치거나 부정에 물들지 않고서 경찰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를 기대하기는 곤란할 것이며, 이렇게 하여 원천적으로 실추된 위신을 가지고서는 경찰 본래의 기능인 도둑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경찰관의 사기를 북돋고, 그들을 부정부패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길이 결코 정년제의 존폐여부와 같은 소절에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의 견해에 의하면, 더욱 시급한 것은 경찰인력의 증원과 처우개선, 그리고 노련한 수사경찰관들을 확보하기 위한 직위 및 보수제도 등의 근본적인 개선을 통해 우선 그 자체 내부에서부터 경찰본연의 임무를 자신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체제정비를 단행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현재 여러 갈래로 분리돼 있는 각종 범죄수사기능을 되도록 경찰에 집중시켜줌으로써, 경찰이 그 이름만 들어도 적어도 죄를 저지른 자들로부터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기구가 되도록 배려하는 정책적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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