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비록 제공자로 추정된「대니얼·엘즈버그」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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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것은 월남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기록이다. 제2차 대전후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기록에 해당하는 미국의 전범기록이다…. 이것이 공개되어 무척 기쁘다.』 벽안을 가진 깡마른 얼굴에 긴장마저 드는 표정이다. 「뉴요크·타임스」지에 게재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월남전극비문서를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대니얼·엘즈버그」교수가 최근 「매사추세츠」공대 국제문제연구소의 그의 연구실에서 「뉴스위크」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3시간동안에 걸친 회견에서 자신이 문제의 극비문서를 제공했는지에 여부에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풍기는 어조는 무엇인가를 시사하는 듯 했다. 『이번 공개된 문서는 이제까지 공개되었던 사실보다 훨씬 신빙성 있는 것이다. 2, 3년 전부터 의회와 일반에게 공개되기를 바라왔다. 이번 문서로 우리는 대통령측근자들과 관리들이 일반에게 거짓말을 일삼아왔음을 알 수 있게 됐다.』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하기전 후 「엘즈버그」는 9개월 동안 월남전 정책자문으로 일했었다. 「닉슨」행정부가 「존슨」의 월남전 정책을 답습하고 있음』을 알고 난 후 「맥나마라」 국방성연구위원회의 월남전 개입경위 내용에 접근하려고 그는 애를 썼다. 그는「헨리·키신저」 대통령특별보좌관, 「존·어윈」 국방차관보 「조지·맥거번」 등을 만나면서 스스로 월남전 개입에 관한 기록을 입수하려 노력해왔다.
이 기록을 공개함으로써 그는「인도차이나」에 대한 지난 25년간의 미국의 과실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 믿고 이 문서의 입수를 위해 수호자 같은 순례 길에 오른 그의 동기는 무엇인가? 그의 경력만으로는 쉽게 잡히지가 않는다.
1952년 「하버드」대 3년 수학 후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1년을 보낸 후 그는 해병대에 입대, 3년 후 중위로 제대했다. 「하버드」대에 다시 돌아온 그는 경제학석사과정을 마치고 몇 년 후 「쿠바」위기직후에는 국무성 정책입안자 「월트·로스토」의 중요한 자문으로 등장했다. 64년 국무성 국제안보특별보좌관에 임명됐을 때는 국방 및 대외정책전문가로서의 그의 앞날은 창창한 것으로 촉망되었다.
그러나 1년 후 월남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전형적인 관리에서 극단적인 반전주의자·반 관료주의자로 급변했다. 머리도 장발로 기르고 공적이건 사적자리에서건 정부정책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언론계의 주요한 비공개 취재원이 된 것도 이때부터.
주위에서는 『순교자 「컴플렉스」또는 『속죄강박관념』 『자아집착』 『자아현시』 등의 이름을 붙여 평하고 있다.<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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