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시초프 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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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는 남한의 봉건주의자들과 미 제국주의자들이 이 전쟁을 유도했다고 믿어마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전쟁을 북한이 시작했다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사르트르」의 말이다. 전쟁을 북괴 측에서 일으키기는 했지만 일으키게끔 유도한 것은 미국과 한국이었다는 뜻이 된다.
한국전쟁을 정말 누가 일으켰는지는 직접 당한 우리에게는 너무도 빤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억측이 가시지 않았다.
그만큼 공산 측의 선전이 극성스러웠다고 할까. 세계의 양심을 대표한다는 「사르트르」까지도 북괴를 두둔했던 것은 정치적 편견으로 해서 붉은 선전에 넘어간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나 작년 말에 나온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에서 비로소 북괴가 침략자였다고 시인됐다.
그의 회고록에서 보면 김일성은 오랫동안 전쟁을 계획,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스탈린」은 『미국이 개입할 것을 염려했지만 만일에 전쟁을 급속히 종결시킨다면 (김일성은 손쉽게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미국의 개입도 모면할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하기에 이르렀다.』「흐루시초프」는 이어 실토하기를 「유엔」군의 인천 상륙이 있자 『「스탈린」은 북괴군에 배치되어 있던 모든 소련 고문관들을 소환했다. 내가 이 사실을 묻자 「스탈린」은 대답하기를 「우리 고문관들을 그 자리에 놔둔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단 말야. 그들이 포로가 될지도 모르고, 그러면 나중에 우리가 전쟁에 관여했다고 꼬리를 잡히게 되거든」.』 중공의 모택동도 처음부터 김일성의 음모에 찬동하였으며, 전쟁은 「국내문제」가 되기 때문에 미국의 참전은 없으리라고 예상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 회고록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흥미로운 부분은 전쟁을 단숨에 끝맺겠다는 김일성의 계산에는 전쟁과 함께 남한에서 북괴에 호응하는 일대 민중봉기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있었다는 대목이다.
전쟁을 이겨낸 것은 무엇보다도 북괴와 끝까지 싸운 민중의 힘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울러 만일에 처음부터 미국의 참전이 분명했다면 전쟁은 회피될 수도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6·25는 차차 잊혀진 얘기가 되고있다. 「레어드」미 국방장관은 또 앞으로 지상군은 「아시아」에 파견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큰 착오를 누군가가 저지르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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