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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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부를 한답시고 미국에 갔다가 내가 귀국한 것은 몇 해 전의 일이다. 공부가 무척 싫었던 탓인지도 모르지만, 이제 객지생활이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귀국할 무렵에는 제법 마음이 설레었다. 대폿집에 가서 빈대떡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 하더라도 꿈만 같았다.
보잘 것 없는, 그러나 나에게는 꿈 같기만 한 이러한 많은 생각에 압도되어 마음이 흐뭇했지만 이러한 흥분에 가려진 내 마음의 한구석에는 제법 비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각오도 또한 마련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유 「레먼」「바나나」 등의 음식은 몇 해 동안 오히려 천대하며 지내왔었고 중고품이었지만 그래도 깨끗한 승용차까지 하나 갖고 있었다. 이러한 호사스런 생활에도 이제 끝장이 나야만 하는 것이었다. 몇 해 동안 벗으로서 지내온 양담배와 양주, 그리고 「코피」와도 이제는 이별을 해야만 되는 것이었다. 초라한 양복차림으로 김포공항에 내릴 때에 나는 세관원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플라스틱」손가방에는 양담배 한보루와 「맥스웰·하우스」「코피」가 한 병 들어있었기 때문이며, 군사혁명 이후 외래품의 단속이 매우 심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양담배와 「코피」를 몇 해 동안 신약같이 모셔두고 아껴가며 애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사차 선배나 천지를 찾아가게 되면 자택이건 사무실이건 그 신예의 「코피」가 으례 대접으로 나왔다.
미국에 있던 아들이 「코피」를 좋아할 것이라 하여 노모도 또한 「코피」를 몇 병 더 사다 놓았었다. 지금도 나는 미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코피」를 마신다. 비장했던 미국에서의 각오는 결국 헛된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 나라의 살림은 미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극락에 접근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우수한 국산품이 생산되고 있다. 또 그 품목과 품질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으므로 누구나 별다른 불편 없이 국산품 애용의 미덕을 지닐 수 있다. 국산인 「포드」나 「코로나」 승용차에, 역시 국산인 「칼텍스」휘발유를 사용하여 거리낌없이 전국을 질주할 수 있으며 최근엔 「맥스웰·하우스」란 「코피」며 『카메이』비누도 국산품으로 되었다. 영국회사에서 만드는 양주도 곧 국산품이 되리라고 신문에서 보았다. 우리 나라에는 이러한 국산의 상품이 범람하고 있으며, 작년 한해 동안에도 10억불어치의 상품을 수출하였다. 즉 10억불을 벌어들인 것이다.
얼마 전에 국산자동차 광고 방송에서 그 자동차가 세계 제1의 우수한 승용차로 뽑혔다고 선전하는 것을 들었다. 이쯤 되면 국산품이 세계수준을 상회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뿐 아니요 그 동일한 자동차가 일본에서도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러한 우수한 국산품이 생산되고 있다고 하면 1년에 10억불밖에 수출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요즈음 위장된 민주주의라느니 또는 위장된 자유선거라는 말을 듣는다. 혹 위장된 국산품은 없는가? 우리 나라에서 세계의 대기업체를 샀거나, 세계의 대기업들이 우리 나라의 시장을 전세 낸 느낌이 짙다. [남천우(이박·서울대공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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