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없는 양산…봄 「시즌」의 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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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년 봄 「시즌」의 연극활동은 표면적으로는 전에 없이 활발했다. 대체적으로 봄 「시즌」이라면 3월에 시작되어 5월을 채 넘기기도 전에 끝나 버리는 것이 상례였지만 금년에는 1월9일 「실험」의 『시라노·드·베르즈락』으로부터 시작, 6월말까지 거의 하루도 연극 없는 날이 없을 만큼 국립극장은 연극 「스케줄」로 붐볐다.
이처럼 공연횟수가 예년에 비해 괄목하게 증가한 현상은 우선 연극계가 전보다 기민한 움직임으로 침체상을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공연횟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관객수가 상대적으로 예년에 비해 훨씬 줄어들고 있음은 꽤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
여석기 교수(고대교수·연극평론가)는 『우리 나라의 연극「팬」은 더 줄어들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금년에 연극관객이 줄어드는 것은 선거와 학원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지만 제작비를 상회하는 관객수입을 올린 극단이 거의 없었음은 공연횟수가 많았던 것이 오히려 기현상인 듯한 생각을 줄 정도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연극을 하는 사람은 없다. H극단의 P씨 같은 사람은 『집을 팔고 밥을 굶더라도 연극은 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꾸준히 연극을 해오고 있지만 텅빈 객석 앞에서 반향 없는 메아리처럼 공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극단이 한번 공연을 위해 소요되는 제작비는 50만원부터 2백만원까지-. 제작비 1백만원을 썼을 경우 입장료 수입으로 제작비를 충당하자면 최소한 5천명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어야한다.
금년 봄 「시즌」 20여 공연가운데 5천 이상의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작품은 오직 「실험」 『시라노·드·베르즈락』뿐(5천3백32명). 그러나 그것도 제작비가 2백만원 가까이 투입된데다가 공연기간이 오래(10일)여서 많은 적자를 냈다는 얘기다.
그 다음이 「자유」의 『아가씨 길들이기』(3월9일∼14일)로서 5천에 가까운 4천9백23명. 금년 봄「시즌」중 흥행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이밖에 3천이상의 관객이 모여 그런대로 체면을 유지했던 작품으로는 「국립극단」의 『신라인』(4천1백94명), 「성좌」의 『인형의 집』(3천8백18명) 「여인」의 『지난여름 갑자기』(3천7백10명) 「동양」의 『소』(3천6백82명) 등으로 불과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이밖에 대부분의 공연은 국립극장의 한 관계자 얘기를 빌면 『「세트」비도 안나올 정도』여서 우리 나라에서 연극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금년 봄「시즌」 연극의 또 다른 특징은 「드라머·센터」가 「레퍼터리·시스팀」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과 함께 일반무대에서 번역극이 창작극을 완전히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예년에도 번역극이 창작극보다 많기는 했으나 금년만큼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국립극장과 「레퍼터리·시스팀」에 의한 「드라머·센터」공연을 합친 21종의 연극을 놓고 보면 번역극이 14편인데 비해 창작극은 겨우 7편-. 관객수에 있어서도 앞서의 「베스트」6 가운데 2편만이 창작극이다.
극단들이 창작극을 외면한 것은 과거부터의 통념이었다. 「창작극은 손님이 들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은 창작극 기피증을 낳았고 실제로 외국 저명한 작가의 저명한 작품에는 대개 수준급의 관객이 들었다. 금년에도 1천여명의 초라한 관객들만이 자리를 메운 작품들만이 자리를 메운 작품들은 모두가 창작극이었다.
여석기씨는 이처럼 창작극이 부진한 것은 연극인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씨는 관객수와 관계없이 연극자체의 질을 놓고 본다면 전체적으로 창작극이 실패하는 율이 번역극보다 훨씬 많다고 말하고 『창작극도 작년의 「허생전」처럼 질적으로 어는 수준에 도달해있으면 관객도 모이게 마련이다』고 풀이했다.
굶더라도 연극은 한다는 광적인 연극인들이 많이 있지만 연극의 활로는 아마도 절대적인 연극「팬」을 늘리는데 있을 것이다. 연극「팬」을 늘리기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일은 보다 질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연기자가 다른 「스케줄」때문에 연습부족으로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는다든가 연출자가 이름만 걸어놓고 실제로는 아랫사람이 연출을 맡는다든가 하는 일은 연극「팬」을 격감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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