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칠한 지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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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치가 이를 데 없이 부패했던 18세기 영국에선 『죽은 정치가의 해부』라는 소화가 유행했었다. 해부를 끝낸 의사 A는 『뇌가 썩어있더라』고 말했으며, 의사 B는 『머리를 너무 정치에 부딪쳤기 때문에 골막까지 상해 있더라』했고 의사 C는 『가슴에서는 「국가멸망」이란 소리가 들렸고, 복에서는 「뇌물」이란 글자가 나오더라』고 했었다.
의사 D는 『결국 뇌물이 정치가에게는 세끼의 식사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영향이 세포에까지 미치고있다』고 진단했다는 얘기다.
부패한 정치가에 대한 불신감과 경멸은 이렇듯 어느 나라에서나 별로 다름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가운데서나마 『국민의 양심』을 자부할 수 있고, 동료에게 깊은 신뢰감을 안겨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 있을 때에는 정치가 바로 국민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참다운 민주정치는 이렇게 해서 향상된다.
영국의 의회정치가 세계의 모범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그 시기가 제일 먼저 시작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칠」 「디즈레일리」 「글래드스턴」 「로이드·조지」 등 역대의 여야의 당수들이 무도 국민들로부터 깊은 신뢰와 애정을 담뿍 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할 때 정당정치는 자칫 파산되기 쉽다. 오늘의 정치는 대중을 상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은 언제나 우상을 찾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들은 대중이 찾는 우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우상의 「이미지」를 모든 정치가들 중에서도 특히 정당의 당수들이 가지고 있다고 대중이 여길 때 정당정치는 멋이 있어지고 흥겨워진다.
그렇지만 오늘의 대중이 찾고있는 정치가의 우상은 어제와는 전혀 다르다. 신비나 권위의 「베일」속에서 권모술책을 다하는 듯한 완고한 「원맨쉽」은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
지도자는 자기가 이끄는 대중의 지지의 핵심이 무엇이며 대중은 지도자로부터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그 신뢰의 본질을 알아야한다.
무엇을 아쉬워하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지도력의 핵심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문제는 경제적 빈곤이 아니다. 정치적 지도자들의 빈곤, 그리고 지도자들의 인격적 빈곤이다. 신민당의 유씨의 경우는 대중의 희망에 먹칠을 한 지도자의 실례로서 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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