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교시절|졸업장 팽개치고 광주학생사건 선봉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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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0여 년 전 서울 교동 국민학교를 두 번 월반한 뒤 들어간 학교는 양정 학교였다. 일인 선생이 판을 치는 학교에서 우리 글과 우리 얼을 묵묵히 지켜나가던 선생이 한 분 계셨으니, 지리를 맡아 가르치시던 김교신 선생이셨는데 선생은 월급 봉투를 털어「성서조선」이라는 얄팍한 잡지를 다달이 꾸며내시어 자전거로 집집이 손수 돌리고 계셨다. 말하자면 사장과 사동을 겸한 셈이었다. 선생은 육상경기 선수로 팔씨름도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늘 하시는 말씀이 『우리들의 육신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양정을 쫓겨나신 뒤 성서조선 사건으로 붙들려 가셨다가 흥남 질소공장 사감으로 계셨는데 전염병에 걸려 그 장사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셨다. 8·15 해방 석 달 전 일이다.
학교에서 시험 때 남의 것을 보고 쓰거나 하면 선생은
『윤 아무개는 광주학생사건 때 졸업장을 팽개치고 뒤쳐나간 일도 있는데 어쩌자고「커닝」을 하고 있는고…』하시면서 매양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것이다.
윤 아무개란 바로 나였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준 분은 유달영님을 비롯한 나의 후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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