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지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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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서 편안히 학교를 나와 초임 발령을 받은 곳이 이곳 강원도 벽지다. 맨 처음 왔을 때는 나 자신도 눈물이 울컥 치밀어 오를 정도였고 관사도 여의치 않아 학교 근처의 조그마한 방을 얻어 생전 처음인 자취 생활에 들어갔던 것이다.
물 한방을 칠하지 않았던 건방진 손인지라 벌을 받아서 그런지 며칠 지나지 않아 손이 틀 지경까지 이른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어두운 방에 혼자 드러누워 생각하면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학생들을 대할 땐 이내 나 자신을 깨닫게 된다. 이쯤 고생은 감수하여야만 한다고 생각이드니 나의 건방진 성격도 이제는 기세가 꺾인 듯했다.
그러나 모처럼 오신 어머니를 대하니 언제 그랬냐 싶게 옛날의 어리광이 되살아난다.
어머니가 제일 약해 보여서 그럴까? 집에 오래간만에 안부 편지 겸 소식을 전할 때엔 자취생활이 재미있고 먹고 싶은 것 얼마든지 해먹으며 마음만 편하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어머니가 갖고 오신 온갖 반찬들을 보니 편안했던 학생 시절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상을 앞에 놓고 가슴이 찌릿해진다.
그 깊고 넓다는 어머니의 사랑은 이제 이렇게 먼곳에 와서 나의 피부에 와 닿는다.
내가 다음에 딸을 가졌을 때 과연 어머니 근처까지 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원성자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창봉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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