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몰카 보는 사람이 몰카범 유혹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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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국희
사회부문 기자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중앙일보 기획보도(10월 10일자 1·10면, 11일자 12면) 이후 인터넷 댓글과 e메일이 쏟아졌다. 대부분 몰카범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취재를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도 몰카범의 실체였다.

 취재 도중 두 명의 몰카범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몰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이었다. A씨(26)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종일 반지하·자취방 등 여성이 혼자 사는 장소를 물색한다고 했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샤워하는 여성들이 그의 타깃이었다. 그는 “죄책감에 100만원 상당의 몰카 장비들을 망치로 부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요즘도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을 기웃거리고 있다.

 또 다른 몰카촬영자 B씨는 법조인 지망생이었다. 그는 “주변에선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곤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호기심에 공용화장실 옆 칸의 여성을 훔쳐봤던 게 시작이었다. 그는 점점 대담해졌다. 화장실 변기 옆 휴지통에 장비를 미리 설치해두는 수법으로 몰카를 촬영했다. 이후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렸지만 몰카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몰카범들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범죄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몰카범의 60%는 20~30대 직장인·학생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몰카 범죄에 손을 대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의 억눌린 성적 욕망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될 경우 몰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단순히 심리적 요인만은 아닐 것이다.

 취재진이 직접 만난 몰카범들은 몰카 사진·동영상을 게시했을 때 쏟아지는 찬사와 반응 때문에 몰카를 쉽게 끊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몰카 범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몰카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몰카 생산이 계속된다는 얘기였다. 실제 성인사이트에 올라오는 몰카는 조회 수가 많게는 1만5000건에 이른다. 희귀한 몰카는 오프라인에서 개당 최고 15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 같은 광범위한 몰카 소비자와 방조자들은 ‘몰카=범죄’라는 죄의식조차 흐릿하게 만든다. 인터넷 등에서 몰카를 보는 사람은 많아도 이를 범죄로 생각해 신고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몰카 범죄는 최근 5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몰카를 찍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의 고통부터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여동생이나 아내, 애인도 몰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사리 몰카에 손을 대거나 이를 훔쳐볼 순 없을 것이다.

손국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