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혈「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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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무리 큰 사건도 따지고 보면 별게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사건도 따지고 보면 그리 단순하게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사건이란 어느 것을 막론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이다. 단순하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엄청난 사건도 단순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꼭 한두 가지 원인만으로 일어나는 법은 없다.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한묶음이 되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파스칼」이『만약에「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치만 더 얕았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뜻에서였다.
「파스칼」이 이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클레오파트라」의 코와 역사와의 연관성을 따져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파스칼」은「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역사의 움직임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주장하려던 것은 아니다. 다만「클레오파트라」의 코처럼 작은(?) 요소들이 여러 가지로 겹쳐서 큰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실지로 눈에 보이는 원인들이 아무리 큰 것 같아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들이 몇곱 더 큰 경우도 많다.
그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있을 뿐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도 애써 덮어두는 경우가 있다. 원인에 따라서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이 엄청나게 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어난「터키」의 정변같은 것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것은 총 한방도 쏘지 않은 군사「쿠데타」였다고 한다.
군부 실력자들의 최후통첩을 받고「데미렐」수상이 이끈 내각이 총사직했다니까 무혈이지만 군사정변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군의 힘만으로 그처럼 쉽게 한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는지.
이번에 실각한「데미렐」수상의 정의당은 지난 65년의 총선거의 결과 집권하였었다. 작년의 총선거에서도 4백50석중 3백56석이나 차지한 다수당이었다.
이만큼이나 국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집권당이 왜 맥없이 물러나게 되었는지? 또 그처럼 비대화한 집권당이 되기까지 정권을 움직여 온 수단은 무엇이었는지?
아마 이런 것들을 엄밀하게 따져보면「클레오파트라」의 코 이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원인들이 숨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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