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장률 실종 … 내년 '신흥국 리스크' 본격화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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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점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다. [뉴시스]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에서 ‘4%대’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10일 한국은행이 기존 4.0%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3.8%로 0.2%포인트 끌어내리면서다. 한은과 함께 4% 성장 전망을 고수했던 기획재정부도 지난달 말 내년 예산안 발표 때 3.9%로 소폭 내려 잡았다. 여타 국내외 기관들도 줄줄이 전망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7일 국제통화기금(IMF)은 기존 3.9%에서 3.7%로 수정했다.

 이 같은 ‘줄하향’은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탓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날 “우리 경제 내부 요인보다는 세계 경제 변화를 반영해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내년에는 ‘신흥국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최근 IMF도 세계 경제 성장엔진 역할을 해왔던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성장 전망치를 크게 내려 잡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이태환 수석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양적완화가 끝낸다는 걸 시장도 충분히 알고 대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려 하니 신흥국의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면서 “각 전망 기관들이 이를 새롭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이 휘청거리면 우리 수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우리 수출 시장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3%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는 점차 회복하겠지만 신흥국 성장 둔화를 온전히 상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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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한은도 내년 수출 증가율을 당초 8%에서 7.2%로, 설비투자 증가율도 7%에서 5.7%로 끌어내렸다. 신운 한은 조사국장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내년에 둔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유가도 당초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 두 가지가 이전 전망 때와 가장 차이 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은 신흥국 리스크가 내년 우리 경제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김 총재는 “3.8%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낮은 수치는 아니다”면서 “경제 활력이 떨어질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성장률이 떨어져 세수 부족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신운 국장은 “내수에서 나오는 세수가 수출에 비하면 2~3배”라면서 “내년 성장률에서 내수 기여도가 올해보다 커질 전망이라 세수 계획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이은 성장률 하향 움직임은 2년 연속 2%대 성장에 만족해야 했던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소식임에는 틀림없다. 또 잇따른 수정은 한은과 정부가 그간 세계 경기 흐름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봐왔던 방증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한은의 이번 전망치는 7월 기존의 3.8%였던 전망치를 4.0%로 끌어올렸다가 석 달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린 것이다. 7월 전망 당시에도 IMF는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전망치가 지나치게 잦게, 큰 폭으로 바뀐다는 비판도 있다. 한은은 연초 올해 물가상승률을 2.5%로 봤다가 이번까지 세 차례 수정해 1.2%까지 떨어뜨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내년 한국의 경제 전망을 발표한 국내외 36개 기관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3.5%다. 연세대 김정식(경제학) 교수는 “내수가 급격히 살아날 가능성이 작다고 보면 결국 내년에도 수출이 경제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면서 “문제는 원화값 상승,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확대, 신흥국 시장 위축으로 수출도 낙관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정적자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와중이라 정부가 지출을 늘리기도 어려운데 기업들도 위축돼 있어 민간 투자가 크게 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민근·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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