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운동권' 기획연재 시의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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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은 대구 지하철 참사, 16대 대통령 취임 및 조각(組閣), 북한 핵문제 등으로 관심 끄는 뉴스가 홍수를 이뤘다.

수백명의 인명피해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기까지도 사망자 집계가 끝나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초기 뉴스의 초점은 사고 상황, 피해 규모, 구조작업의 신속.정확한 전달과 책임 규명, 은폐기도 여부에 집중됐다.

*** 지하철 초기보도 다소 산만

이런 큰 재난이 발생하면 보도기능을 가진 지상파 방송들이 재난 특집방송을 하는 것이 보도의 상식이다. 그런데 사건이 18일 오전 9시55분에 발생했는데 SBS의 첫 보도는 10시51분, KBS 11시5분, MBC 11시19분으로 늑장보도였다. 더구나 방송들은 그후 5~10분짜리 특보를 몇차례 내긴 했으나 스포츠중계 같은 정규 프로를 계속하면서 본격적인 재난방송을 4~6시간 후에야 내보냈다.

이런 소홀한 재난보도에 대해 19일자 중앙일보는 경쟁지들과는 달리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다. 중앙일보의 첫날 보도는 기사가 중복되거나 기사면에 따라 일부 사실이 엇갈리는 등 덜 체계적인 모습도 보였다.

3.1절을 맞아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은 서울시청 앞에서 주한미군 철수 반대, 반핵 반김, 자유통일국민대회란 이름의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촛불시위로 조성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보수진영의 대응이란 성격을 지닌다. 이에 맞서 진보진영에선 같은 날 세종로에서 반전 평화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철군 반대 집회를 주도하는 인사들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25일자 신문을 보면 그 기사가 중앙일보는 사회4면 1단, 조선일보는 사회2면 3단, 동아일보는 사회2면 2단으로 보도됐고, 한겨레는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과 동아는 다음날 대회 관계자를 별도로 인터뷰한 특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26일 북한 핵을 둘러싼 보수.진보 양 진영의 충돌과 사회 양극화를 우려한 김수환 추기경 등 재야 원로들의 성명은 27일자 중앙일보 사회2면 3단, 조선일보 사회3면 2단, 동아일보 사회2면 2단, 한겨레 1면 3단으로 보도됐다.

뉴스보도만을 놓고 봐도 조선은 보수진영 성명에, 동아는 양쪽을 똑같이, 중앙은 재야 원로 성명에 크게 비중을 두고 있다. 중앙일보가 표방하는 '열린 보수'란 성격을 지면에 어떻게 투영할지에 대해 깊은 성찰과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24일자 노무현 당선자와 청와대비서관 내정자 워크숍 기사를 보면 盧당선자가 자기의 측근이라 불리는 동지들이 과거 생일선물을 하면서 동봉한 편지에 "우리의 도구로서 변함없이 나가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는 대목을 감회가 북받쳐 회상하는 부분이 타지에는 보도됐으나 중앙일보엔 없었다.'도구'란 용어가 하도 함축적이어서 빠진 자리가 커 보였다.

*** '열린 보수' 지면 반영 고민을

공정위의 신문시장 직접 개입 방침을 보도한 22일자 중앙일보 기사는 사실 위주로 작고 차분했다. 전 같으면 권력의 언론개입이라는 차원에서 크게 이슈화했을 사항이고 이번에도 그렇게 끌고가려 한 신문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정위의 개입이 자전거 신문 판촉 등 절제와 자율 규제를 제대로 못한 언론계가 자초한 책임이 크다는 점에서 차분하게 사실 위주로 보도한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간의 중앙일보 보도 중에는 5회 기획연재 '운동권, 신주류로 뜬다'(13~24일)가 크게 눈에 띄었다. 盧대통령 시대의 주류 교체가 같은 민주화시대인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와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기획연재의 의미와 재미가 컸다. 많은 매체가 그 내용을 베꼈고, 경쟁지도 그 기획을 따라왔다.

24일자 1면 톱 1997년 세풍 주역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을 미국 구치소에서 인터뷰한 기사는 중앙일보의 특종이다. 그 기사의 처리에 있어 1면 톱이 적절하냐, 3면의 일문일답이 너무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없지 않으나 특종기사로서의 가치가 저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