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대학기풍의 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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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는 현재 일부 대학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종합성적평점제 또는 최저학점제 등을 통한 학업성적불량학생의 유급·제적제도를 전국의 각 대학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도록 권장키로 했다고 한다.
9일 문교부가 밝힌 집계에 의하면 현재 이러한 유급 또는 제적제도를 실시하고있는 대학은 전국 75개 대학 중 13개 종합대학교에 국한돼 있고, 70학년도의 경우 성적불량 또는 최저취득학점미달로 유급 되었거나 제적처분을 받은 대학생은 14만명의 대학생 중 고작 8백57명(그 중 제적은 37명)에 불과했었다 한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대학의 분위기를 조성키 위해 문교부는 조금이라도 성적이 불량한 학생들에게는 엄격히 이와 같은 제도를 적용토록 각대학장에게 권고하기로 하고 이에 따른 학칙변경을 종용하리라는 것이다.
얼핏보아 문교부의 이와 같은 장학방침은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기풍을 진작시켜보려는 동기에 있어 시의에 적절한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대학에 관한 한 이와 같은 권장이 실상 대학의 자주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대학뿐이 아니라 각급 학교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학교당국자와 교사들 자신의 자주적인 판단과 노력에 달려있음은 췌언을 필요치 않는 민주교육의 황금률이라 할 수 있다. 하물며, 대학의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대학다운 학풍을 조성하는 최선의 방법인가는 그것을 대학당국자 아닌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대학의 자율정신을 위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대학의 기풍을 조성해야 하겠다는 문교당국의 친절심은 그러한 장학방침을 한낱 공문통첩으로써 시련하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많은 대학에 공부하는 기풍이 모자라게 된 배경을 분석하고, 이를 원천적으로 광정할 수 있는 대학교육진흥책을 세우는데 있다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대학들에 공부하는 기풍이 모자란다는 근본원인으로서는 사회정세의 불안 등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울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믿기로는 첫째로 교수수에 비해 학생수가 상대적으로 너무 많다는 것과 다음으로 도서를 비롯한 대학연구시설의 원초적인 결여를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격증하는 학생수에 비하여 대학생들의 학문적 정진이나 인격적 지도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유자격 교수가 부족함으로써 대학사회의 불안이 조성되고, 저질교육에 대한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특히 독일과 일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독일대학들이 1인전제 교수지도위주의 「인시티투트」제로부터 다수교원「팀」의 분담제 학생지도 위주의 「디파트먼트」제로 구조개선을 시도, 지금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로서도 결코 타산지석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 굴지의 국립서울대학교의 도서시설조차가 왕년의 일제식민지 대학시절에 비해서도 크게 뒤떨어져 있음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적어도 모든 학술분야에 걸친 정기간행물이 「백·넘버」라도 빠짐없이 갖추어져 언제든지 교수·학생들의 열람이 가능한 상태가 되지 않는 한, 공부하는 학생일수록 지속적인 학구열이 충전될 길이 없어 실의를 감추지 못한 채 공부를 외면하게 되고 만다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학교육에 관하여 문교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하더라도 부질없이 어떤 일률적인 장학방침을 시달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문교당국으로서는 재정적·행정적 뒷받침을 묵묵히 실천하는 가운데 우리 나라의 모든 대학들에 대학다운 분위기를 스스로 감돌게 할 수 있는 근원적 대책을 세우는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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