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양다리외교 일본의 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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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외무성이 오는 3월 말에 북괴로 가는 일본 상인 10여명에게 발급한 여권의 목적지 기재난에 북괴의 소위 정식 호칭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기재해 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은 이때까지 소위 국명을 사용하지 않고 「평양」이란 지명만을 기입해왔는데, 일본 정부가 정식문서 속에 북괴에 대해 소위 그들이 주장하는 정식 호칭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정상화한 이 마당에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외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일본의 이 같은 조치는 한일 협정에 위배되기 때문에 강경히 시정을 요구하고 그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언명했으며, 주일대사관 강영규 공사도 즉각 일본 외무성에 강경한 항의를 했다고 보도되었다.
이 같은 일본의 처사가 한일 협정에 위배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는 것이나, 일본에 대해 최근 이런 일이 전혀 예상되지 않은 바도 아니었다. 작년 유엔 총회에서 중공가입안이 단순 과반수를 얻게 되었고 또 「유엔」을 비롯 강대국도 「분단국 유엔 동시 가입」문제가 거론됐으며, 동서 양독간의 회담이 열린 것도 주지의 사실이니, 약삭빠른 일본이 이 같은 국제 조류를 외면하고 있을리 만무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적을 취득한 재일교포의 국적을 다시 「조선적」으로 바꾸어 준다든가, 교포 북송을 재개한다는 따위의 한일협정 위반사례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하기야 일본 자민당 경부의 외무대신까지 지낸 등산이란 사람이 중공에 각서 무역인가를 연장 받기 위해 건너가 자민당 정부를 군국주의 부활 세력·반동 세력 등으로 중공과 장단을 맞추는 연극을 서슴지 않고 있고 보면 한일 협정위반쯤은 다반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장삿속이 작용했다고 한들 일본의 양다리 걸치기식 외교에는 분격을 금할 수 없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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