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의 신경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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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 전 일이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오는 길에 봄을 재촉하듯 내리는 봄비를 만났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한결 산뜻해 지는 것 같아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오랜만에 봄에 대한 기다림과 한껏 낭만에 젖어 길을 걷는데 갑자기 「택시」의 굉음이 들리며 선뜻한 물기가 내 얼굴을 덮는 것이 아닌가. 엉겁결에 주춤하고 섰는데 내 옆을 스치던 「택시」는 멀리 사라지고 옷은 짙은 흙탕물에 뒤범벅, 얼굴에까지 뒤집어쓰고만 꼴이 되었다.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골목길로 해서 급히 집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생각해보니 쓴웃음 밖에 안나왔다.
비오는 날 낭만을 찾고 꿈에 젖어보는 내가 너무 어리석은 까닭일까? 전에도 서너번 이런 봉변을 당했다. 한 두번은 「넘버」를 봐두어 파출소에 신고도 해보았기만 그후 아무 연락도 없었다. 비오는 날 거리에서 느껴야하는 공포감, 우중의 신경과민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차만 보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우산을 방패로 차와 나와의 대결에서 나를 지켜야 하는 풍경은 비오는 날이면 누구나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차도에서 떨어져 길을 걷는다는 것. 이제 멀지않아 본격적인 장마철도 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 같은 우중 신경과민증환자가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한낱 공상으로 그쳐 버리지 않게 되기를 빌고싶은 심정이다. 김숙(인천시 중구 도원동23-16 김영극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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