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환송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금 대학가에는 졸업 시즌이 한창이다. 웃음이 있고, 꽃이 있고, 그리고 각 총장들의 푸짐한 송별의 말 잔치들이 흥을 돋우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총장의 졸업생 환송사는 크게 다룬다. 그게 곧 그 나라의 오늘과 내일의 지적풍토에 대한 귀중한 버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송사 하나로 대학총장의 모든 것을 저울질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환송사와 환영사를 쓰고 나니 1년이 지났더라고 술회한 어느 대학총장까지 있다. 물론 서양의 얘기다. 그만큼 환송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네 신문들이 각 총장들의 환송사를 크게 다룬 것도 이런데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총장들의 환송사가 올해에도 들뜬 말만의 잔치로 장식된 인상을 남겨주고 있음은 딱한 일이다. 내일의 사회의 성운이 오직 대학졸업생에게만 달려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 때문일까….
사회가 참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지혜로운 인간이지, 단순한 대·학 졸업생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것은 총장에게만 책임이 돌아가는 얘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사회가 학생들을 우대한다는 뜻에서 통용되는 학생 할인권 제란 것도 한번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부유층이 잘 이용하는 항공편에도 방학중에는 학생에게 할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런 것의 모순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 탈인 것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학교엘 가지 못한 젊은이에게는 왜 할인제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어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작 할인제가 없어도 좋을 사람에게만 할인제가 있는 것은 역시 모순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우리 나라의 경우, 선진국을 따르기 위해서, 이른바 부국강병의 교육정책을 폈던 일제 때부터의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짜 일꾼보다는 너무 학교 졸업증 소지자만을 특별나게 우대 해왔던 사회에도 우선은 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앞질러야 할 총장까지 사회의 본을 뜰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대학생들이 참다운 우대를 받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거친 풍상 속에서 자란 나무일수록 아름다와진다. 지성도,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경우 대학이란 결코 풍상을 막아주는 온실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대학총장들은 입을 모아 졸업들에게 앞날을 기대 한다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졸업생들이 얼마나 될 것인지. 정말로 앞날을 기대할 만한 지성을 몇이나 키워냈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말의 잔치에 취하기에 앞서 모든 책임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