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탐험 (54) - 'FA의 산파' 데이브 맥낼리

중앙일보

입력

60~70년대를 풍미한 한 메이저리거가 있다.

2년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FA 자격을 획득 텍사스 레인저스와 2억5천2백만 달러(10년간)라는 천문학적인 연봉 계약을 맺을 때, 그는 몬태나 세기의 체육인(Montana's Athlete of the Century)에 선정될 뿐이었다.

짐 토미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8천5백만 달러(6년간) 계약을 맺던 4일(한국 시간)에는, 짐 토미의 대형 계약을 다룬 매스컴의 헤드라인에 밀려 초라하게 세상을 하직한 원로 야구인.

그 야구인은 바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거쳐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던 명투수 데이브 맥낼리(60).

맥낼리는 1975년 프로 선수들에게는 '현대판 노비문서'로 인식되던 보류조항(Reserve Clause)에 정면으로 맞서, 앤디 메서스미스와 함께 선수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법정 투쟁을 주저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또, 그는 소속 구단인 몬트리올 엑스포스측이 선수와의 구두 계약을 위반하자 구단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그 결과 선수가 6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게되면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법적인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는 권리 장전과 같은 현행 FA 제도가 세상에 빛을 보게한, 'FA 제도의 산파'인 셈.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FA의 혜택은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하고 후배들에게 금전적인 영광을 안겨준 채, 지병인 암으로 인해 쓸쓸히 세상을 뜬 불운한 선구자였다.

그가 법정투쟁을 벌이던 1975년, 4만4천달러 정도에 불과하던 선수의 평균 연봉이 2002년 현재, 2억3천8백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맥낼리의 법정 투쟁으로 인해 무려 5만배에 달하는 선수의 연봉 인상이 이 기간동안 있었던 것이다.

좌완투수인 맥낼리는 1962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메이저리거로 데뷔하여 13년간 오리올스에서 선수생활을 한 후, 197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됐고 몇달 후 은퇴를 결심했다.

그는 생애 통산 184승(119패), 방어율 3.24, 1,512탈삼진을 기록했으며 4시즌('68 ㅡ'71년) 연속 20승을 달성했으며, 3번의 올스타 수상과 2개의 월드시리즈 반지를 끼었다.

1971년에는 팀동료 투수인 마이크 쿠엘러, 짐 팔머, 팻 돕슨과 함께 시즌 4명의 20승 투수 배출이라는 오리올즈 프랜차이즈 사상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한편, 아메리칸리그 기록인 17연승(1999년 로저 클레멘스의 20연승에 의해 깨짐)을 수립하기도 했다. 게다가 1970년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그랜드슬램을 날려 월드시리즈 사상 유일무이의 '투수 그랜드 슬래머'로 기록되고 있다.

1976년 은퇴 후, 빌링스에서 자동차 딜러를 하던 맥낼리는 암선고를 받고 몇년 동안 투병생활을 지속하다 지난 4일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오리올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All-Century team에 소속되어 있다.

그는 푸른 잔디 그라운드에서는 물론, 칙칙한 법정에서도 메이저리그의 제도적 발전을 위해 한 몸을 희생하며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메이저리그의 영웅이었다

맥낼리의 까마득한 후배인, 현 메이저리그 고액 연봉자들이 맥낼리의 사망에 즈음하여 선수 노조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시킨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후세에도 '빛과 소금'되어 전해질 수 있도록 의미있는 추모사업을 추진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지우 명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