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원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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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태평양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오끼나와의 싸움에 끌려 들어간 한국인은 3천명, 그 중의 3백86명이 희생되었다 한다.
이들의 유골이 26년의 풍상 속에 버림받듯, 버려진 끝에 이제야 오끼나와에 세워질 전몰한인위령탑 속에 안장된다고 한다.
이름하여 「청구의 탑」. 38선 부근의 돌 38개로 탑의 기단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한이 풀려질 것인지.
잊고 싶은 역사의 한 장이었다. 과거로 하여금 과거를 파묻게 하라는 말이었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우리네의 체험이었다.
2차대전 때 징병령과 국가총동원령으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은 약3백만명. 그중 24만명이 실제 전선으로 끌려가고 그중의 약2만명이 희생되었다.
강제노동에 종사한 수는 3만8천명이라지만 그중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든 역사와 기록으로부터도 말살된 채 이들의 유골은 일본의 각 탄갱 자리에 흩어져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탄광 일은 무서웠지요. 언제 바위가 떨어질지도 몰랐습니다. 사고로 죽은 사람을 파묻은 구덩이가 즐비하게 깔리고…. 몸이 아파도 쉬지 못했습니다. 너무 괴로와서 다이너마이트를 입에 물고 자살한 사람도 있었읍니다….』
언젠가 일본의 한 신문은 이런 회고담을 실은 적이 있다. 이런 고생 끝에 죽은 한국인 노무자들의 유골이 축풍에만도 수백체가 방치되어 있다는 얘기다.
찾는 이가 없어 버려 두고 있는 유골들은 또 일본후생성의 한방에서 잠들어있다. 2천3백30체.
이들은 모두 남방전투에서 전몰한 한국인 군인·군속들이라 한다. 전후 지금까지 유족의 손에 넘어간 유골은 7천2백위. 그러나 이 2천3백30위만은 전후2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일본식제단 뒤에서 잠들어 있는 것이다.
어느 쪽에 성의가 없어서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넋이라도 고이 잠들게 하자는 것은 국경과 정치를 초월한 가장 인도적인 얘기가 아닐까.
유족을 찾지 못해서라는 것은 어느 쪽에서 나온 말이든 우리의 서글픔을 한결 더해주고만 있다. 일본인의 경우는 1백60만이 넘는 군사자의 신원이 모두 확인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전천시에서도 전몰한인을 위한 위령탑이 계획되고 있다 한다. 이번의 「청구의 탑」도 일본인들의 속죄의 뜻으로 세워진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이 모든 역사의 원령들을 고이 잠들게 만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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