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어머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터놓고 얘기하기로 하자. 요즘은 대학 교육을 받은 어머니도 많고 해외 유학을 했다고 해서 제법 아는 체 하는 여인들도 수두룩하지만 어린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와서 하는 말이나 태도를 보면 그건 50년 전의 우리 어머님들이 했을 그것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이건 어찌된 일일까?
최고 교육을 받아 새 교육법을 이해한다는 분이 병원에 와서 하는 말이
『얘, 오늘은 의사 선생님이 보기만 하는 거다. 그리고 주사는 놓지 않으니깐 안심해.』
『오늘은 절대로 아프지 않아. 약만 살짝 바르면 그만이야.』
『너 울면 여기 버리고 갈 테야. 바보같이 넌 왜 그렇게 겁내니? 이 겁쟁이야.』
『오늘 치료를 잘 받으면 내 갈 적에 아이스·크림 사주지…』.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바로 이게 그렇게도 많은 교양을 지녔다는 어머니의 말씀인지, 이건 너무나 어이없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어린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해 놓고 어머니 자신이 솔선수범 거짓말을 하고, 또 어린이들에겐 열등 의식을 품지 않도록 교육시켜야 된다면서 그 어머니 자신이 자식에게 그것을 품게 하고, 어머니 때문에 남에게 창피를 당했다는 수치감을 남 아닌 자기 아들딸에게 갖게 하며, 마치 병원에 왔다는 사실이 특별한 일이어서 그것도 마땅히 어떤 댓가를 받아야만 되는 것 같은 그릇된 생각을 자식에게 주고 있으니…이건 대체 어찌된 것일까?
우리는 다시 여기서 곰곰 돌이켜보아야 할 것 같다. 어머니가 자기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는 사실-그것은 곧 어머니가 자기의 건강을 염려하신 까닭이란점이 일찍부터 이해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한다든가 주사나 어떤 검사를 받는다는 일은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자신의 내일의 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니 참아야 한다는 점을 어린이들에게 잘 얘기해서 일찍부터 그것이 이해 되도록 해야만 그 후 병이 악화되어 불행한 결말을 보는 일도 없게되고 또 다친 곳이 있어도 그것을 부모에게 숨긴다는 일이 없을 것이다.
타인이 보는 앞에서 『바보 같다』느니 『겁장이다』하는 말을 남이 아닌 자기 어머니로부터 들었을 때의 그 아이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버리고 가겠다>는 말은 또 뭣인가? 그 어린이는 그래도 장차 그 어머니를 존경하고 그 어머님 말씀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먼 훗일은 제쳐놓고도 내일 또 다시 병원에 가려들며 자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 살고 있다는 안도와 만족감에 잠 길 수가 있을까.
아픔을 참고 치료를 받으면 뭣을 사 주겠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치료는 누구를 위해 누가 받도록 해주는 것이기에 그 댓가가 요구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병원에 갈 적마다 현재의 많은 어머니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신과 위치 그리고 「사랑」 까지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속히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물론 어린것을 자주 병원에 찾지 않도록 돌보아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이한수(한일 병원 치료 과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