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참가 막은 케플러 회의 … 세계 과학계 집단 보이콧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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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산하 에임스연구소가 주최하는 ‘케플러 회의’라는 게 있다. 2009년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돼 지구에서 6500만㎞ 떨어진 태양 궤도를 도는 케플러 우주망원경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다. ‘태양계 외부 행성 탐사’라는 케플러 프로젝트를 연례 점검하는데 올 회의는 다음 달 4~8일 열린다.

 그런데 이 회의가 과학자들의 집단 보이콧 위기를 맞았다. 최근 에임스연구소가 회의 참가 신청자 가운데 중국 국적 연구자들에게 참가 금지를 통보하는 e메일을 보내면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5일(현지시간) 전한 바에 따르면 연구소는 “NASA 시설 안에서 열리는 회의에 중국인의 출입을 금하는 내용의 연방법이 지난 3월 마련된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최근 의회의 추가적 문제제기 때문에 미국 내 연구기관에 소속된 중국 국적 연구자도 마찬가지로 제한을 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연방법은 프랭크 울프(공화·버지니아) 하원 세출위 소위원장이 발의해 지난 7월 통과한 예산법 개정안이다. 이에 따르면 NASA 예산은 중국과 협력하는 어떠한 활동에도 쓰일 수 없다. 개정안은 연방 정부 및 관계기관이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을 구매하는 일도 금지했다. 중국의 사이버 공격 및 안보기술 유출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울프 의원은 2011년 5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과 NASA가 중국과 공동으로 과학 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NASA의 이번 조치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 과학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프 마시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버클리) 교수는 가디언에 “순수한 과학 연구에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것은 부끄럽고 비윤리적인 조치”라고 성토했다. 그는 회의 조직위 측에 e메일을 보내 “케플러 회의는 지구에서 수조㎞ 떨어진 행성에 관한 것이지 국가 안보와 무관하다”며 “이런 식의 차별을 하는 회의에 양심상 참석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데브라 피셔 예일대 천문학 교수 등 다른 연구자들의 불참 의사도 잇따랐다. 크리스 린토트 옥스퍼드대 박사는 참석자 전원의 보이콧을 촉구했다.

 케플러 회의를 주관하는 앨런 보스 NASA 연구원은 이번 조치와 관련한 질문에 즉답은 피한 채 “(이번 일은) 과학이 아니라 불행히도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간의 IT 안보 신경전이 격화되면서 미국 내에선 중국과의 과학협력을 제한하자는 움직임이 꾸준히 일어왔다. 2010년 존 컬버슨 연방 하원의원(공화·텍사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NASA와 중국 국가항천국(CNSA) 간의 협력을 중단하도록 촉구했다. 연방의회는 2011년 4월 NASA 예산으로 중국인 방문객을 초빙하지 못하도록 한 데 이어 올 3월엔 NASA 시설에 중국 국적자가 출입을 할 수 없게 결정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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