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천국’의 불편한 진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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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30면

몇 년 전에 한 독일인을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그동안 말썽 한 번 부리지 않던 가전제품이 고장 났다. 서둘러 AS센터로 전화를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시간 후, AS센터 직원이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고장 난 물건을 고쳐 놓았다. 그러고는 돌아갈 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그 광경을 본 독일인 손님이 매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불편은 물건을 고장 낸 사람이 끼친 것 아닌가요?”

이렇게 반문하면서 이런 일은 독일에선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 나라에서는 가전제품이 고장 나 AS 신청을 하면 몇 주쯤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건비가 비싸서 일단 사람이 집에 오면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상당한 출장비를 지불해야 한단다. 그런 그에게 전화를 받자마자 출동해 바로 문제를 해결한 것도 모자라 돈 한 푼 받지 않고, 심지어는 물건 고장 난 것이 마치 자기 탓인 양 고개를 숙이는 광경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한 달 남짓한 그 독일인의 한국 체류 기간은 그야말로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배달문화였다. 그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들을 집에 편안히 앉아서, 그것도 하루 24시간 중 아무 때나 시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주문한 지 15분도 안 돼 집으로 배달된 자장면을 먹으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짐짓 우쭐해진 나는 ‘심지어는 한강 고수부지 같은 야외에서도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고 으스댔다. 그 말을 듣자 자장면을 먹던 그의 눈이 더 커졌다.

사실 그때 나는 그에게 독일에 비해 한국이 얼마나 살기 편한 나라인지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예전에 독일에 갔을 때 엄청나게 불편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 7시만 되면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아 버리는 통에 먹거리를 미리 사놓지 않아 주말 내내 쫄쫄 굶은 적도 있었고, 저녁 때 술 한잔 하려고 어두운 거리를 헤맨 적도 있었다. 백화점은 왜 또 그렇게 문을 일찍 닫는지.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 24시간 편의점에서 아무 때나 원하는 걸 살 수 있고, 아무리 춥고 더운 날이라도 집에 편히 앉아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급하게 보낼 물건이 있으면 퀵서비스를 부르면 되고,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택배를 이용하면 된다. 심지어는 제주 감귤이나 완도 전복 같은 농수산물도 집 앞까지 배달되니 세상에 이렇게 살기 편한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런데 배달 자장면을 먹던 그가 문득 가격을 물었다. 나는 유로화로 음식값을 환산해서 알려주었다. 그 순간 그는 충격적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믿지 못할 정도로 가격이 쌌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점에 가서 먹을 때와, 집에서 시켜 먹을 때의 음식 가격이 같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배달기사의 노동력이 들어갔는데, 가격이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제야 그는 자기 눈에 환상적으로 보였던 한국의 편리한 배달문화가 사실은 형편없이 싼 인건비 덕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음식을 배달해 먹고, 필요할 때마다 퀵서비스나 택배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배달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과속을 해가며 받는 돈이 얼마인지, 택배 기사들이 식사도 거른 채 밤 10시까지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받는 돈이 얼마인지, 사용자들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편법과 꼼수로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지, 그리고 고객은 이들에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를 하며, 또 얼마나 무례하게 구는지, 이 모든 것을 알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시점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한쪽에서 값싼 노동력의 혜택으로 생활의 편의를 즐기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 생존을 위해 살인적인 노동과 비인간적 대우를 감내해야 한다면 그것을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선진국에서 우리나라 같은 양질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직접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사람을 부르는데, 돈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슴이 쓰리지만 그 덕분에 블루 칼라들도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다고 한다. 이렇게 어느 한쪽이 독식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된다면, 거기서 오는 생활의 불편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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