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집이 부른 악순환 과외 공부|교육 정상화를 위한 제언|김옥기 <중앙교육연구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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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너는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는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젠 이런 말조차 크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원주 어린이 소사 사건』쯤 나서야 자극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너는 나의 이루지 못한 소원 (좋은 학교)을 이루어다오』라는 간절한 소망 앞에 꼼짝 달싹할 수 없이 희생의 제물이 되는 어린이들…. 왜 이러한 강요로 끔찍하게도 불에 타죽고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고 하는지? 오로지 너만을 위해서 간절히 원하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왜 몰라주느냐고 생각하는 부모일수록 사건은 크게 터지게 마련이다.
극성스런 과외 공부가 성행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다. 『나는 어떤 일에 재미가 있고, 소질이 있으니 학교에 가서 무슨 공부를 열심히 해 보겠다.』『나는 1급 자동차 정비공이 되려니까 공업 학교에 들어가겠다』『나는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해야 하니 수업료가 싼 이웃의 초급 대학에 들어갔다가 졸업 후 ○○대학 3학년에 편입하겠다.』『나는 형이 다녔던 명문 사학의 동창생이 되겠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을 때 불평이란 있을 수 없게 된다. 반면 부모의 강요, 교사의 강권, 친구에의 동조로, 무턱대고 일류 상급 학교를 지망하게 될 때에 차차 자기를 발견하고 불안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부모나 교사는 아동의 적성을 발견해 주도록 해야한다. 저마다의 재간을 살릴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며 인생을 의젓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 소위 「나쁜 학교」를 없애야겠다. 모든 학교는 좋은 학교로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좋고 나쁜 것은 상대적인 평가다. 그러나 부실 기업체처럼 「부실 학교」가 너무 많다. 학교재정이 없어 학생의 수업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학교는 나쁜 학교다. 전임 교수를 두지 않고 강좌의 반 이상을 외래 강사로 메우는 학교도 나쁜 학교다.
이렇게 한없이 절대적 기준에 의해 평가한다면 나쁜 학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특징 특색이 없는 학교도 나쁜 학교다. 이런 것들 때문에 입시 지옥은 생긴다.
학생들에게는 낡은 지식의 주입 대신 스스로 지식을 발견하는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인고의 도금 대신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지도돼야 된다. 맹목적인 성취 욕구 대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낼 수 있도록 지도 돼야 한다. 이런 좋은 학교를 만든다는 것은 우리의 공동 책임이다. 교육은 공공적인 것이기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내 학교」란 생각을 모두 가져야 한다. 「내 자신」만을 떼어 생각하는 그릇된 생각에서 어처구니없게도 「과외 공부」가 나타난다. 연간 평균 3천원 내지 4만원을 자기 자녀에게만 쏟을 때 학교는 더욱 약체화되어 온 것이다.
자가용 자동차로 「우리 선생님」을 「내 선생님」으로 모시려 할 때 아이들의 교육은 벌써 망쳐지는 것이다.
극성스런 바람을 일으키지 말고 집안의 따뜻한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자녀들 앞에서 학교를 비방하는 대신 좋은 점을 찾아 주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학교에 꽃 대신 값싼 실험기구 하나라도 보내는 마음이 자녀들을 바로 기르는 마음이다. 「정과 교육」이 바르게 되도록 협력해야 할 것이다.
세째, 교육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입시보다는 입학 후에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고교의 경우 1년 반은 가방 만들고 왔다갔다하다가 2학년 후반기부터는 시험 준비에만 매달리고 만다. 대학의 경우 노트 짝만 들고 서성거리다가 입사 시험에 1주일 정도 시험 준비를 하면서 졸업한다. 사회에 나와서는 귀동냥으로 듣기만 한 책들을 즐비하게 진열하고 웃사람의 눈치만 살피면서 전전긍긍하는 나약한 인간이 된다.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되어가며 산업 기술은 나날이 개선되어 간다. 그 일류 간판이 녹슬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부실」이란 딱지를 맞아도 내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려든다. 그러면서도「일류」를 찾고 따라서 악순환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 무서운 결과에 눈감아 버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남의 얘기만 듣는다. 속이 텅빈 사람일수록 힘-금력·권력·지력-을 동경만 하고 있다. 메마른 사람일수록 허영심에 들떠 유행만 쫓아간다.
머리가 없는 사람일수록 일류만 꿈꾸게 된다. 줏대가 없는 사람일수록「일류 학교」란 간만에 현혹된다. 학교의 우열을 너무 선전하지 않도록 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서 발전하는 길을 사회는 열어줘야 한다. 사회 전체가 사람을 볼 때, 인품·성격·성실·근면·노력 등의 면에서 평가하는 풍토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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