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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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구정이렷다.
예같으면 의정대신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상감에게 신세의 문안을 드리는 날이렷다. 그리고 전문 (신년을 축하하는 글) 과 표리도 봉정하고…. 표리란 시골에서 만든 거친 백목면과 백주같은 조제품을 헌상하는 것을 말했다. 검소를 가상한다는 뜻과 농민의 기분을 되새긴다는 뜻에서라 했다.
이런 옷감을 궁정은 물론이요, 양반네들이 입었을 리는 없다. 그러니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나 다를 것 없고, 그래서 표리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뜻만은 가상타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민가에서는 가묘앞에서 다례를 지냈것다. 누구나 세장을 하고 두루 세배를 다니고, 또 세찬도 먹고…·
겨울날 따사한 빛 님의 등에 쪼이꼬저,
봄 미나리 살진 맛을 임의 손에 드리과저
임이야 무엇이 없으리요마는 내 못잊어 하노라.
이런 노랫속의 미나리를 떡꾹과 곁들여서 먹는 구정이렷다.
예 같으면 벽사와 양액의 예방으로 성수선녀, 직일신장을 그린 세화와 갈·주양장군을 그린 문배를 문간에 붙여 놓았을게다. 화난·사신·역신등의 부상을 쫓는 온갖 그림들과 함께….
그리고 또 덕담들도 흥겹게 오갔을게다. 구정에는 이웃끼리 서로 새해에는 논마지기라도 마련하기를 바랐다. 득남하기롤 바라는 이웃도 있었다. 마치 1년동안의 인정과 후덕을 단번에 서로 나눠갖겠다는 둣이….
구정만 지나면 또 야박스러운 세상살이의 되풀이였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을 게다. 그래도 덕담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정의 입김을 일깨워 주기엔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그나마 표리의 의식도 없다. 너무나 표리가 심해진 세상이라서일까. 봄 미나리로 입맛을 돋우는 버릇도 없어졌다. 그만큼 입안이 사치스러워진 때문일까.
세화도, 문배도 이제는 볼 수도 없다. 예보다는 몇곱 더 이런 젓들이 아쉬운 요새인데 말이다.
그리고 또 덕담들도 어느 입가에서도 오르내리지를 않는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각박해져서일까.
아니면 그만큼 인정이 메마른 때문이랄까.
구정이렷다.
그러나 이제는 구정의 자취란 아무데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캘린더」에서만 지워진 것이 아니다. 구정의 구수한 풍습과 함께 구정에 얽힌 따뜻한 마음씨도 모두 사라졌나보다. 이런게 세월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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