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구 음식물쓰레기 처리하는 송파구 장지동 시설 악취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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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단지에 5600여 가구가 사는 서울 송파구 장지동 송파파인타운. 이 아파트 13단지에 사는 진모씨는 지난 추석 연휴 때 악취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날이 더워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으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더라고요. 물건이 타는 냄새와 썩는 냄새가 합쳐진 것 같은 악취가 2년 전 이사 온 이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쾌한 냄새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참다 못해 향수를 집 안 곳곳에 뿌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씨는 “처음에는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는데 ‘주민리폼’ 교실에 참여하기 위해 아파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송파자원순환공원에 가보고서야 악취의 진원지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12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34)은 “한여름에 냄새가 가장 심하고 오후 5~6시 이후 부터 날 때가 많다”고 했다. 7단지에 사는 또 다른 주민은 “우리 단지는 앞에 다른 단지가 막고 있어 어느 정도 걸러질 것 같은데도 창문을 열어놓으면 악취를 종종 맡는다”고 주장했다. 이 아파트 주민만이 아니다. 인근 문정동 건영아파트 등 장지·문정동 주민들도 악취 때문에 구청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주민들이 냄새가 풍겨 나오는 곳으로 지목한 송파자원순환공원은 송파파인타운 13단지와 600여m 떨어져 있다. 음식물·재활용 처리시설과 폐기물 반입장 등이 들어선 시설로, 2011년 가동을 시작했다. 이 시설은 송파구 전역과 강남·성동·양천·동작구 일부 지역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 300톤을 매일 처리해 건조사료로 만들고 있다. 송파구에서 발생하는 재활용품도 수거해 하루 40톤을 처리한다. 민간 업체들이 각 시설을 20년간 운영한 뒤 구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활용 처리시설 안에 압축된 쓰레기와 스티로폼이 쌓여있다(위). 음식물 처리시설 너머로 아파트가 보인다.

  지난달 23일 오후 5시쯤 자원순환공원 내 재활용처리시설에선 쓰레기 선별 작업이 한창이었다. 2층 높이의 자동 선별 레일에 올려진 쓰레기들은 페트병·캔·빈병·비닐 등으로 나뉘어 1층 바닥으로 떨어졌다. 직원들은 종류별로 선별된 재활용 쓰레기를 기계에 넣고 1.5m 높이의 상자 모양으로 압축해 쌓았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대형 출입문 밖으로 쓰레기 썩는 시큼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주민들이 악취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음식물 처리시설에서도 비슷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자정 무렵 음식물을 담은 쓰레기 차량들이 이 시설로 몰리다 보니 시설 근처에서 정체 현상이 빚어진다. 어쩔 수 없이 새벽 시간대에 음식물 처리 작업이 이뤄지기도 한다. 새벽에 냄새가 심해진다고 주민들이 주장하는 이유다.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송파구는 지난 8월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과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해 악취를 측정했다. 같은 달 19일 나온 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법적 기준치에는 미치지 않았다. 판정위원 5명에게 악취 장소에서 채취한 공기에 맑은 공기를 섞어 맡게 하니 평균적으로 맑은 공기 비율을 10배로 늘릴 때까지 악취가 난다는 결과가 나왔다. 법적 기준치는 15배다.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기준치 이하라서 법적 행정조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악취 문제는 심리적인 면이 크다”며 “과자공장에서 나는 냄새도 그곳을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겐 달콤하게 느껴지지만 그 주변에 사는 사람에겐 악취로 느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송파파인타운 주민 중에서도 “같이 사는 우리 아들은 냄새가 난다며 창문부터 닫는데 나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때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조사 결과는 10월 중순에 나올 예정이다.

  일부 주민은 “악취 조사를 하긴 했지만 단 하루에 2시간여 동안만 측정한 것이어서 객관적이지 않다”고 반발한다. 아예 해당 시설의 지하화나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아파트 13개단지연합회 관계자는 “음식물 처리시설을 이전해 달라며 주민 8000명이 서명을 해 2011년 환경부·서울시·송파구에 제출한 바 있다”며 “구청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하니 지켜보겠지만 악취가 개선되지 않으면 집단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여름마다 대책회의를 열어 업체와 구청이 세 차례나 해결안을 내놔 추가 시설을 설치했지만 악취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시설을 지하화하든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파구 윤치국 클린기획팀장은 “지하화나 이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며 “지난 8월 주민까지 참여한 대책회의에서 업체 측이 악취 감소 시설을 올해까지 추가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음식물처리시설 운영 업체 관계자는 “올해 안에 음식물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를 태우는 소각로 1대를 추가하기로 하는 등 매해 개선 공사를 벌이고 있다”며 “주민들이 호소하는 악취는 우리 시설만의 원인이 아니라 인근 성남하수처리장과 탄천변의 강남구 쓰레기집하장에서 나는 냄새도 관련이 있는 복합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송파구 전체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시설에 대해 가까이 사는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상황은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공공시설이지만 설치된 지역에서 갈등 요인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인천 서구 수도권쓰레기매립지의 사용 기간 연장을 놓고 인천시와 서울시·경기도가 마찰을 빚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도권매립지 주변 주민과 인천시는 다른 지역에서 몰려온 쓰레기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파자원순환공원 인근 주민들 역시 “송파구가 아니라 다른 구의 쓰레기 차량까지 이곳으로 몰려오니 더욱 악취가 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송파구 윤 팀장은 “송파자원순환공원에 추가 시설을 설치한 뒤에도 민원이 재발하면 내년부터는 송파구를 제외한 4개 구에서 들어오는 음식물쓰레기는 점진적으로 통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처리업체가 매일 건조 사료로 만드는 음식물쓰레기의 3분의 1은 강남구 등 다른 구에서 온다. 반입이 금지되면 그만큼 업체의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더욱이 서울에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시설이 송파구를 비롯해 강동·동대문·도봉·서대문구 등 5곳에 불과해 당장 다른 구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5개 시설에서 25개 구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데, 송파구가 반입을 거부하면 나머지 네 곳으로 분산되거나 경기도 쪽으로 가야 하는데 여의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유재원(행정학과) 교수는 “주민과 민간위탁업체 간 갈등의 책임자는 결국 구청”이라며 “구가 시설 운영 수익과 확실한 악취 제거에 필요한 시설 투자비 등을 면밀히 조사한 뒤 큰 청사진을 가지고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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