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로즈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박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정신의 계발」을 제창한 것은 인상적이다. 그는 진취적 기상과 개척정신을 찬양하며, 두개의 인간담을 서게했다. 일엽편주로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의 이야기와 「세실·로즈」경(Cecil John Rhodes)의 탐험담. 모두 영국인의 경우인 것이 흥미롭다.
한조각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이야기는 가까이 「프란시스·치체스터」를 기억할 수 있다. 65세의 이 노인은 불과 16m의 조각배 「집시·모스」 4세호를 타고 66년8월27일 영국 「플리머드」항을 떠났다. 그는 「아프리카」남단을 돌아 대서양·인도양을 거쳐 호주의 「시드니」에 도착, 다시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남태평양을 통과, 남부남단을 돌아 귀항했다. 무려 2백16일의 멀고 먼 항해였다.
영국인들은 이 노인의 일대 서사시적 항해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영국 「엘리자베드」여왕은 이 노인에게 「나이트」작위를 수여하고, 그 장엄한 인간 「드라머」를 찬양해 주었다.
「세실·로즈」(1853∼1902)의 인간평은 거의 1백년전의 이야기다. 영국 태생인 그는 17세의 소년시절에 폐결핵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신병을 안은채 형의 목화밭에 가서 일을 했다.
그러나 수확이 시원치 않았다. 그는 남아의 「킴벌리」로 광산개척을 떠나는 형을 따라 나섰다. 이때 그는 의사들로부터 향후 6개월밖에는 더 살수 없을 것이라는 선언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때에 결심했다. 『이 6개월안에 나는 일생의 일을 해치울 것이다.』
그가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를 서두른 것도 이 때문이다. 순조롭게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일대서의 의약으로는 폐결핵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의 의지는 죽음을 유예시킬 수 있었다.
「세실·로즈」의 개척을 위한 집념은 죽음을 초월한 경지였다.
남아의 「베추아날랜드」·남「로디지아」·「잼비아」·말라위」등은 그의 이런 정신력이 발견한 신천지였다. 물론 그는 남아의 금광들을 수없이 발굴했다. 이때에 그나름의 철학은 퍽 속된 것이었다. 『뭐니 뭐니해도 돈이 힘이지!』하는 생각에 사로 잡혀있었다.
결국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1백살을 산사람보다도 더 위대하고 많은 일을 했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옥스퍼드」대학의 「로즈」장학금은 의기와 용기와 신념에 찬 학생에게 수여되고 있다. 『공부벌레(bookworms)가 아닌 학생에게』라는 단서는 탐험가다운 「유머」가 있다.
문제는 이런 개척자들의 의기충천할 수 있는 사회의 기풍과 희망과 보람이 진작되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