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부 단속에도 ‘다운계약서’ 바람 왜?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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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기자] “계약서에는 실제 거래가격보다 2000만원 낮은 가격으로 적어야 합니다. 심하면 절반 이상 낮게 적는 경우도 있어요.”

최근 세종시의 아파트를 사려던 김모(55·청주시)씨는 중개업소로부터 다운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분양권에 6000만원의 웃돈이 붙었는데 웃돈 값으로 1000만원만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개업소에선 별 것 아니라는 듯 얘기했지만 웬지 내키지 않아 김씨는 계약을 미루고 있다. 그는 “모두가 다 한다고 하지만 꺼림직 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집중 단속에도 사라지지 않아

정부의 집중 단속에도 불구하고 세종시의 다운계약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대전국세청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지만 위법 행위를 적발해 세종시청에 통보한 부동산 중개업소의 위법행위는 3건 정도다.

세종시 K공인 관계자는 “집주인이 양도소득세를 조금이나마 덜 내려고 다운계약서를 요구한다”며 “양도세를 모두 내고 나면 남는 게 없고, 매도자 우위시장이 형성돼 집주인이 원하는 거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세종시에 다운계약서가 등장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지난해부터 세종시 민간 아파트의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1년)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하면서 다운계약서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집중 단속이 시작되면서 좀 주는 가 싶더니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2차 정부부처 이전을 앞두고 입주가 시작됐거나 연말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의 가격이 치솟고 있는 때문이다. 양도세 면제기간을 채우지 못한 집주인이 매물을 내놓으면서 다운계약설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입주가 시작된 세종청사 인근의 한 아파트는 분양가 대비 7000만~8000만원이 올랐고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 입주하는 아파트 분양권에도 주택형별로 3000만~4000만원의 웃돈이 형성돼 있다.

다운계약서 당사자엔 과태료 부과

하지만 2년 보유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차액에 대해 44%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예컨대 웃돈이 5000만원이라면 기본 공제와 누진 공제를 제외한 양도 차익에 대해 44%의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이 경우 양도세는 2000만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계약서상 웃돈을 1000만원으로 다운할 경우 양도세는 300만원 안팎으로 줄게 된다. 계약서상에서 4000만원만 빼면 양도세를 확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세종시 A공인 “매수자가 실수요자인 경우 양도세에 거부감이 없어 집주인의 요구(다운계약서)를 잘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분간 다운계약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가장 입주가 빠른 첫마을 아파트도 올 연말에나 입주 2년차가 되는 신생 도시이기 때문이다. 분양권이든 일반 매물이든 지금 팔 경우 양도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다.

첫마을 단지 내 상가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다운계약서는 그나마 세종시 주택시장 상황이 좋다는 증거”며 “그러나 엄연한 불법이므로 다운계약서를 요구하거나 응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세종시의 불법 중개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다운계약서를 쓴 중개업소는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고, 다운계약서 거래 당사자들에겐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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