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연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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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화재가 잦다.
올 겨울 들어 큰불이 거의 연일 잇달아 일어난다. 화재가 일어난 자리엔 잿더미뿐이다. 인명도 재산도 남는 것이 없다. 실로 허무하기 짝이 없다.
최근 3년 동안의 집계에 따르면 매년 화재가 26%씩 증가하고 있다. 건설하며 불이 나는 격이다. 지난해의 경우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백여 명에 이른다. 재산피해액도 15억5천여 만원을 헤아린다. 이들은 그야말로 불길 속에서 제 행 무상으로 끝을 맞은 셈이다.
화재의 규모도 건수와 비례해서 확대되고 있다. 화재피해의 연평균 증가율은 무려 81%를 기록한다. 이것은 불길이 점점 더 사나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올해는 작년의 피해보다 무려 10억 원이나 더 늘어난 25억 원을 기록했다. 이만한 예산이면 30개 교실의 국민학교를 무려 30여 동은 훌륭하게 지을 수 있다.
최근 서울시경의 점검에 따르면 서울시내 7층 이상의 고층건물 2백36동 중에서 소방시설을 갖춘 곳은 29%에 지나지 않았다. 71%의 빌딩은 화제에 전혀 무방비상태이다. 이들이 어떻게 준공검사에 합격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고층건물의 화재를 뒤쫓아갈 소화기구가 없는 것은 딱한 일이다. 현재 35m이상의 높이에서 솟아오르는 불길엔 물줄기를 댈 수 없는 형편이다. 『화재는 하늘에서. 소화작업은 지상에서』의 현실인 것이다. 당국도 11층이 넘는「빌딩」의 불은 소화의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른바 사다리 차의 유효길이가 35m를 넘지 못한다. 빌딩들은 당연히 자체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새삼 우리는 이 화재의 경우 하나를 놓고도 건설의 사후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건설은 도로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건물이 고층화되어도, 그것이 불길 속에서 무력한 존재일 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근대화도 마찬가지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포함하지 않는 근대화는 결국 절름발이의 부작용을 면하지 못한다. 근대화작업은 하루아침에 성취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새삼 발견 할 수 있다.
도시의 개발은 인간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그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간부재의 개발은 방화시설부재의 개발과 같은「난센스」를 빚고 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목적조차 모호하지 않은가. 비단 건물뿐이겠는가. 우리가 성취한 모든 것이 불길이 닿기 전에 바로「발전의 목적」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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