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부 3.0 100일이 바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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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3.0 비전’을 선언한 지 100일이 지났다. 정부운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첫걸음이다. 무엇이 근본적인 변화인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수 있으나 국민을 중심에 두고 정부와 국민이 소통하는 투명한 정부를 만드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갑과 을의 관계로 인식된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고는 다른 어떤 정부혁신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행한 첫 명령이 정부 보유 정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었음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되는 스마트 시대의 국민 개개인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프로슈머(prosumer)다. 국민이 정부가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며 그들이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모습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국민은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그런 요구를 권리로 경험하고 있다. 변화된 이런 환경에 적응하고 국민과 정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투명하게 해 가는 것이 곧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드는 실천적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6월 19일 정부 3.0 비전을 선포한 이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아 다행이다. 정부는 중앙부처·지자체별 3.0 추진 계획을 수립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공공데이터법·정보공개법을 제·개정해 국민과 정부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제도적 노력을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 체불 사업주에 관한 정보를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임금 체불로 유죄가 확정된 3000만원 이상 체불 사업주의 성명·나이·상호·주소 및 체불액 등을 공개해 피해자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개방된 정부데이터는 편리한 생활 정보로 활용되고 있다. 예컨대 기상데이터 개방에 따라 농·수산, 유통, 에너지 관리 등 의사결정에 기상기후 정보를 활용하는 분야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난방공사는 기상데이터를 활용해 난방 공급량을 예측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했고(연 30억원), 보광 훼미리마트(현재 CU)는 유통량 조절을 통해 33% 정도의 매출이 향상됐다고 한다.

 이런 조짐에도 현재의 변화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몇 가지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보 공개에 대한 기관의 인식 제고가 급선무다. 지난 2개월 동안 총 49개 기관에서 1092건의 정보를 공개했지만 여전히 사전 정보 공개는 미흡하다. 특히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보 공개에 각별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전 정보 공개의 분명한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즉 비공개 정보 외의 모든 정보는 공개하고(네거티브 방식)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함으로써 공개 정보의 질을 높여야 한다. 또한 데이터 개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는 대부분 내부업무용 데이터베이스(DB)로 민간이 바로 활용하기에는 오류율이 높음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목적 외 사용 금지, 자유로운 이용 제약 등 개방·활용을 제약하는 법령(예로 기상산업진흥법·통계법·약사법·저작권법 등 33개 법령) 개정은 빠를수록 좋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부의 빗장 풀기가 일회성 허물 벗기가 아니고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변혁은 틀을 깨는 일이며 관행에 젖어 있는 정부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무장된 국민과 정부가 격의 없이 협력할 때 가능하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