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첫 자진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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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이 개시된 지 근 석달 만에 대량살상무기 보유 사실을 처음으로 자진 공개해 사찰에 협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이 25일 밝혔다.

블릭스 사찰단장은 "이라크가 최근 수일간 대량파괴무기 관련 정보가 담긴 6통의 편지를 사찰단에 보내왔다"고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이라크의 협조 자세에 실질적인 진전의 조짐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블릭스 단장은 다음달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사찰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그 직후 미국과 영국은 자신들이 제출한 새 이라크 결의안에 대한 안보리 표결을 실시한 뒤 결과에 관계없이 곧바로 이라크를 공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라크의 안간힘=블릭스 단장은 "이라크는 편지에서 과거 생물무기를 폐기했던 한 장소에서 R-400 폭탄 2개를 발견했으며 이중 하나에는 (생물무기인 듯한)액체가 채워져 있었다고 보고해 왔다"고 설명했다.

R-400 폭탄은 탄저균 포자 등 생물.화학 제제를 채워 공중투하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일종이다.

블릭스 단장은 그동안 "이라크는 R-400 폭탄 1백55개를 생산했다가 걸프전 당시 전부 폐기했다고 주장해 왔으나 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라크가 사찰에 비협조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최근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선 "이라크가 신뢰성을 잃었다"고까지 언급, 7일 보고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힐 것으로 관측돼 왔다. 이런 시점에서 이라크가 무기를 자진해 신고한 것은 사찰단 보고의 방향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돌려 전쟁을 피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 안보리 약소국 압박 강화=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의 자진신고에 대해 "사담 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은 지금까지 전혀 없다고 주장해온 무기를 갑자기 발견했다며 다시 한번 세계를 우롱했다"며 깎아내리고 "안보리가 새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으면 미국은 단독으로라도 전쟁을 수행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칠레.멕시코.기니.카메룬.앙골라 등 5개 국가에 강력한 압박외교를 펼치며 결의안 찬성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지원을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 3국에는 "결의안에 반대하면 1991년 유엔의 걸프전 결의에 반대했다가 연간 7천만달러의 경제원조를 상실한 예멘 꼴이 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자국 석유의 약 15%를 미국에 수출해온 앙골라.기니에 대해선 "미국이 석유 살 곳은 많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또 칠레에는 "(결의안 반대시)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무산될 것"이라고 위협하고, 멕시코에는 지난 3주 사이에 국무차관과 국무장관 보좌관을 잇따라 보내 "반대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찬호 기자

<사진 설명 전문>
한스 블릭스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이 25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관계자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블릭스 단장은 “이라크가 폭탄 2개 등 무기 보유 사실을 자진 신고하는 등 사찰에 협조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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