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황금 방패' 왜 뜷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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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9단의 대마가 또 죽었다. 25일 벌어진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첫판에서의 일이다. 이세돌3단과의 결승대결 때마다 첫판에 이창호의 대마가 죽어나갔는데 이번 세번째 격돌에서도 공교롭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기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대마란 본시 쉽게 죽지 않는다. 더군다나 타개의 달인인 이창호9단의 대마가 죽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이세돌만 만나면 이창호의 대마가 죽는 것일까.

이창호9단의 '황금방패'가 이세돌3단의 '날카로운 창'에 뚫려버린 첫번째 사건은 2001년 LG배 결승에서였다. 이세돌이 이창호의 대마를 잡으러 갔을 때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고 모두들 생각했는데 진짜 죽어버렸다. 어떤 강풍에도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던 이창호가 가랑잎처럼 쓸려나가던 그때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2002년 왕위전에서 두사람은 다시 만났다. 그리고 도전기 첫판에서 또다시 대마잡이가 시작됐다. 조금만 양보하면 충분히 살 수 있는 말이었다.그러나 이9단은 양보하지 않았고 대마는 함몰당했다.

이9단은 살 자신이 있었기에 양보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세돌의 펀치력은 이창호의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리고 이틀 전의 LG배 결승 첫판에서 다시금 대마가 죽었다. 바둑의 생리로 볼 때 이9단 정도의 실력자가 오직 삶만을 추구한다면 그런 돌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엔 오직 살자고만 했는데도 이창호9단의 대마는 이세돌3단의 급소연타에 걸려들어 순식간에 사망했다.

첫번째 죽음은 '방심' 탓이었다.그런 대마를 잡으러 오는 기사도 드물거니와 죽는 일도 없었기에 이9단이 방심한 것이다. 물론 이9단이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대마는 살 수 있었다.

두번째 죽음은 '자존심'이 원인이었다. 양보를 강요하는 상대에게 조금 내줘도 괜찮은 상황이었지만 이9단은 양보 대신 대형 사활문제로 판을 몰아갔다.

이번 세번째 죽음은 이세돌의 '펀치력'이 만들어냈다. 물론 그 전에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돌을 잡아내는 과정에서 이세돌이 보여준 펀치력은 실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이창호와 이세돌의 승부는 매번 격렬했다. 이창호9단의 바둑은 포근한 대지와 같아서 어떤 것도 포용하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세돌3단과 만나면 돌부처같은 이창호9단도 눈을 부릅뜬다. 그의 대지 위에서 이세돌이란 야생마가 마음대로 뛰노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격렬한 승부호흡이 대마가 죽게 된 진정한 원인일 것이다.

또 하나는 '실리싸움'이다. 두사람 모두 실리를 선취하는 게 유리하다고 보는데 그점에서 이9단이 한발 앞서므로 이세돌 쪽은 잡으러 가는데 목을 걸게 된다.

그러나 앞선 두번의 승부는 결국 이창호9단의 승리로 끝났다. 첫번째는 2연패 후 3연승. 지난해의 왕위전은 1대1 다음 2대2로 갔다가 3대2 승리. 과연 이번엔 어떤 패턴을 보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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