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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좌도 우도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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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좌파와 우파의 나뉨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서 시작된다. 혁명 직후 열린 국민회의 때부터다. 의장석에서 보아 왼쪽엔 공화파가, 오른쪽엔 왕당파가 앉은 게 기원이다. 좌파는 진보를, 우파는 보수를 대변한다지만 각 사회와 시기에 따라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현재 중국에서의 좌파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평등을 강조한다. 이들은 개혁의 폐단이 자유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민족주의 성향을 띠며 반미(反美) 구호를 외친다. 언론사 중에선 베이징의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중심에 있다.

 중국의 우파는 보편적 가치를 주장한다. 법치 건설과 인권 보호를 말한다. 서구의 민주와 내용적으로 맥이 닿아 있다. 미디어 가운데에선 중국 남부의 광저우(廣州)에 포진한 남방일보(南方日報)그룹이 우파의 보루라는 말을 듣는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이 중국에서도 ‘좌파와 우파의 다툼(左右之爭)’은 사회 갈등의 요인이다. 넌더리가 난 덩샤오핑(鄧小平)은 경제건설에 매진하자며 한동안 ‘논쟁하지 말라(不爭論)’는 지시를 내렸고 지금까지도 이는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진다.

 그런 중국 사회가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좌경화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의 인터넷 공간은 환구시보는 물론 인민일보 해외판, 홍기문고(紅旗文稿), 당건(黨建)과 같은 중국 관방 매체들이 쏟아내는 우파 성토의 목소리로 뒤덮여 있다.

 중국 당국은 얼마 전 유언비어를 단속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인터넷 비방죄를 신설했다. 인터넷을 통해 정치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또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신고해 왔던 네티즌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시진핑이 지난 3월 국가주석에 취임한 지 불과 반 년 만에 이미 100여 명의 민주화 인사가 중국의 공안당국에 붙들렸다는 보도도 나온다. 시진핑의 중국은 좌(左)로 걷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12월 초 첫 지방 시찰지로 광둥(廣東)성의 선전을 선택했다. 선전은 1992년 덩샤오핑이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내려가 계속적인 개혁개방을 외쳤던 곳으로 개혁을 상징하는 도시다.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하는 시진핑의 행동은 지속적인 개혁 추진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또 권력을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겠다는 시진핑의 약속은 법치 건설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비춰졌다. 중국의 우파가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자극을 받은 남방일보 그룹의 계열사 남방주말(南方周末)이 연초 신년기획으로 준비한 게 ‘중국의 꿈(中國夢) 헌정의 꿈(憲政夢)’이다. 시진핑이 강조하는 ‘중국의 꿈’에 착안해 그 꿈을 이루려면 헌정부터 제대로 실시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 기획은 독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 광둥성 선전부가 개입한 것이다. 선전부는 남방주말의 헌정 강조가 중국 공산당의 일당 통치에 도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당권(黨權)을 법치 아래 두려는 의도로 봤던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우파에 대한 좌파의 공격은 헌정이 주요 소재다. 좌파도 법치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파가 헌정을 말하는 이면에는 중국에 서구와 같은 다당제와 삼권분립 제도 등을 도입해 공산당 일당제를 허물기 위한 속셈이 깔려 있다고 본다.

 현재 중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건 좌파의 목소리다. 시진핑의 행보 또한 좌파에 힘을 실어주는 측면이 있었다. 자칫 문혁 시대를 연상시킬 수 있는 군중노선을 외치며 ‘거울 보고 옷 매무새 똑바로 하기(照鏡子 整衣冠)’ 등을 강조한다.

 또 20년 전 소련이 해체된 가장 큰 원인은 이상의 신념이 흔들린 데 있었다며 “소련의 어제가 우리의 내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 선전부문에는 ‘본분을 다하라(守土有責)’고 요구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충칭(重慶)을 무대로 좌파적 개혁에 열을 올렸던 보시라이(薄熙來)가 ‘작은 마오쩌둥(小毛澤東)’이었다면 시진핑은 ‘새로운 마오쩌둥(新毛澤東)’이란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시진핑의 참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좌와 우의 논리로는 시진핑이 걷는 치국의 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시는 두 개의 길은 절대로 걷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하나는 ‘옛길(老路)’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좌파적인 길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잘못된 길(邪路)’이다. 소련처럼 깃발을 바꿔 서구식 민주의 길로 들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시진핑이 가려는 길은 무얼까. 실용주의 길이다. 시진핑은 이 같은 자신의 뜻을 다음과 같은 말로 밝히고 있다.

 “총명한 사람은 시대에 맞춰 변하고(明者因時而變)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따라 제도를 바꾼다(知者隨事而制).” 시진핑에게 있어 좌와 우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공산당 일당제를 지키는 가운데 중국의 국정(國情)에 맞춰 나아갈 뿐이다.

 따라서 시진핑의 10년 동안 그에게 서구식의 정치개혁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대신 그는 경제적으론 시장의 기능을 더욱 강조하는 대담한 개혁을 취할 전망이다. ‘정치적으로 조이고 경제적으론 풀겠다(政左經右)’는 것이다. 이게 시진핑이 걷고자 하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길이다.

 11월 개최될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이 같은 시진핑의 치국 방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개혁을 심화하기에 앞서 사상 무장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게 중국의 현재 모습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