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첫눈에 교통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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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을 비롯한 일부지방에 첫 눈이 내렸다.
적막한 겨울하늘 가득히 피는 백화! 그것을 볼 때의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가슴이 뛰고 유년기의 유언을 다시 한번 맛보게 된다.
검게 그을리고 소란스럽던 도시까지도 그 모습을 바꾸고 소음을 진정시켜 얼마나 무구하고 고요하고 정숙한 친지로 변하는가.
빛나는 은 백의 세계는 그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매료하고 우리 마음을 순화하며 다정다감케 한다. 우리는 잠시나마 가난한 살림살이의 고달픔을 잊고 풍성하고 환희로운 삶의 찬가를 읊조리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11월에 접어들면 벌써 눈을 기다리게 되고 또 눈이 내리고서야 진정 겨울이 겨울답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눈의 멋과 낭만도 이제는 차츰 사라지려는가.
이번에 서울에 내린 눈은 불과 3.6㎝이었다는데, 30일 저녁에는 귀가조차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도 자동차들은 빙판 길 위에서 곡예를 하였고 거리마다 밀린 차량으로 대 혼잡을 이루었다. 즐거운 눈길이 아니라 두려운 눈길, 위험한 눈길에서 사람들이 느낀 것은 눈도 귀찮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편의와 혜택을 주었지만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앗아가고 있는가. 이제는 겨울의 서정마저 저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앗기려 하니 안타깝기도 하다. 사라져 가는 자연, 도시에서 멀어져 가는 자연을 가까이 손짓하여 부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마음.
이러한 마음을 잃어버린 인간 세계는 아무리 편리하고 윤택하여도 결국은 살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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