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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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정신적 가치를 경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시드니 항공에 도착한 교황 바오로6세는 말했다 한다. 시드니 시내에서 그는 또다시 비슷한말을 되풀이하였다.
인류의 역사를 흔히 5만년으로 잡는다. 이것을 약 62년씩의 라이프·사이클로 나누면 대충 8백 개가된다. 그 중에서 자그마치 6백50개는 동 혈 생활로 지냈다.
사람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소급하여 고작 70개 사이클이 겹치던 동안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6개 사이클의 과거부터는 인쇄문자가 유행됐다.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게 된 거도 지나간 4개의 사이클 때부터이다.
지난 2개의 사이클 때부터는 사람들이 전기 모터를 이용하게 됐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자의 대부분은 8백 번째의 사이클, 그러니까 지난 62년 동안에 개발된 것들이다.
이것은 미국인학자 알빈·토플러의 풀이다. 얼마나 우리네 물자문명이 급속도로 발전되어가고 있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 만큼 급격한 문명의 템포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풍부한 물자의 생산과 이에 따르는 욕망의 증대. 이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잃고, 오히려 물질이 주체가 되어가고 있는 듯한 세태가 된 것이다.
이처럼 본래의 자기와 인간에의 무관심에서 어느덧 자기소외에 빠지고, 반 자유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인간이기도 하다. 물질문명의 비약과 함께 쇠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정신인 것이다.
『우리는 다시는 고대처럼 노예가 될 위험성은 없어졌다. 그러나 로봇이 될 위험성은 더욱 증대해가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아들라이·스티븐슨도 말한 것이 있다.
물질에만 치우친 변화의 템포는 날로 어지럽도록 급격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한 적응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래서 인간의 내면세계는 더욱 황폐해지고 더욱 말소 적인 것만 기대게 되는가 보다.
『인간을 오늘의 상황 속에 몰아 넣은 것은 바로 인간의 정신이다. 이 똑같은 정신이 어떻게 하면 오늘의 상황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이렇게 발레리는 50년 전에 말한 것이 있다. 발레리의 이 물음은 50년 후의 오늘,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바오로 교황은 70년대의 세계의 가장 심각하고도 큰 과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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