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비와 관능이 넘치는 화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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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찬삼 여행기<서사모아 군도서 제2신>>「사모아」의 아름다운 자연은 무한한 선을 불러일으킨다. 「쇼펜하워」는 악마가 세계를 창조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악마가 어찌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 수 있으랴. 자연미는 고스란히 선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이 지극히 어질어 보이는 것은 종교의 감화 때문이라고들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 장엄할 만큼 초 종교적인 자연의 힘이 그렇듯 아름다운 인간성을 이룩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나라 섬을 한바퀴 돌면서 음류 시인처럼 자연과 인간을 찬미하노라니 파랑새처럼 그지없이 행복해 짐을 느낀다. 이 같이 자연은 크나큰 기쁨을 안겨다 주는가 보다.
이 섬은 화산도이기 때문에 섬 둘레의 해안에 자연히 길이 나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랄까 샘이 나는 곳엔 으례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화산 지질로서 비가 오면 곧 땅속에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어 흐르다가 해수면에 가까운 해안에서 샘물로 솟구치는 것이다.
이 사모아 섬은 「서머시트·몸」의 단편 『비』의 무대로 서 널리 알려진 만큼 비가 많은 곳이어서 큰 연못엔 맑은 물이 늘 그득 괴어 있다.
해수욕을 하고는 몸에 묻은 짠물을 씻기 위해서 단물인 이 연못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는 안성마춤이었다. 하도 피곤했기에 야자나무 그늘 아래서 발랑 누워 흐르는 구름 떼들을 쳐다보고 있다가 시선을 들리니 이 무슨 조화일까, 맞은 편에는 인어처럼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원주민 여성이 빨래를 하다가 옷을 홀랑 벗더니 물 속에 풍덩 뛰어들어간다.
이 정경을 보니 그쪽으로 헤엄쳐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황홀하게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그 여성이 나를 보았는지 부끄러운 듯 연못가로 올라가더니 부리나케 옷을 걸쳐 입었다. 맑은 물에 흠뻑 젖은 그 가무잡잡한 몸매는 정녕 관능적이었다. 「주피터」신 같으면 그대로 놔둘리 없을 것이다. 미남자로 화신하여 기어이 꾀고야 말 것이다. 이런 충동을 느낄 만큼 「사모아」여성은 「섹스」를 발산한다.
이 여성이 옷을 입었기에 실체가 될 것 같지 않아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그쪽으로 헤엄쳐 갔더니 부끄러운지 아니면 빨래를 다 끝내고 가는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숲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물의 요정」이었던가. 아니면 「숲의 요정」이었던가. 무슨 환형 같기만 한 듯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너무 경솔하게 했나 싶어 은근히 뉘우쳐 지기도 했다. 여성에 가까이 가지 않았더라면 먼 빛으로나마 좀더 이 「사모아」여성의 생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실연한 사람 모양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헤엄쳐 돌아와서는 새로운 기쁨을 찾기 위하여 이곳을 떠났다. 이 섬은 주화산 곁에는 작은 기생 화산이 생겨 있는데 폭발성을 지닌 화산 일대에는 크고 작은 검은 화산탄들이 수없이 흩어져 있다. 여기서는 돌을 주워 버리면 밭이 되며 이 돌들을 밭 둘레에 쌓으면 밭의 경계인 돌담이 된다. 이 밭둑 아닌 돌담은 소의 침입을 막고, 따라서 해풍을 막는 구실을 하니 일거양득이랄까. 그러나 때로 잡초가 우거져 있는 밭을 보면 게으른 농민들이 아닌가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 섬은 최근의 화산 작용으로 이루어진 지대로서 땀은 굳어서 팔 수 없기 때문인지 길가에서 보이는 무덤들은 「통가」왕국에서 본 것처럼 돌을 주워 모아 쌓은 계단식 피라미드가 비교적 많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돌 틈에서 낳아 일생동안 돌을 줍다가 돌 속에 묻힌다고나 할까, 아뭏든 돌과는 떨어질 수 없는가 보다. 돌 속에 묻히는 우리 나라 제주도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시골집들은 화산 돌을 주워 다가 다져가며 4. 5계단씩 쌓아 올린 축대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으며 벽을 두르지 않았으니 완성하지 못한 집 같다. 더운 곳이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비밀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개방적인 집에서 들 사는 것이 아닐까.
그 방의 내부는 길이 10여m, 너비 5∼6m의 것이 많은데 한 가족이 함께 모여 살며 가재도 고스란히 밖에서 들여다보인다.
이 나라는 경건한 신자들이 많은데다가 아직도 원시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이루고 있어서 이렇듯 개방된 집을 짓고 사는지는 모르나 범죄가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신생 독립국으로서 앞으로 문화와 교육이 눈부시게 발전하더라도 이 선량한 사회의 본질은 변치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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