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성형수술 부추기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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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31면

오늘 아침, 내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글이 올라왔다. 여느 ‘셀카’나 파울로 코엘료가 했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인용구를 능가하는 내용이다. 서울의 한 버스 안에 실린 모 성형외과 광고 사진이다. 서울, 특히 강남을 경유하는 대중교통에선 성형외과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철 3호선은 유독 그 양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 광고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태극 문양 옆에 ‘대한민국에서 취업하기’라는 글이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었다. 그 밑엔 성형외과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한 여성의 눈·코·엉덩이 수술 전후의 사진이 있었다.

그 광고가 한국 사회와 여성의 위상에 대해 말해 주는 바는 뭘까? 그 광고를 게재한 성형외과 의사는 자기 나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 광고는 한국 사회의 현재를 반영한다. 내가 일했던 한국의 크고 작은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외모를 어느 정도까지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여성을 채용할 때 더 그랬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선 그런 경향이 유독 강한 것 같다. 그 광고는 그런 기준을 강화시키고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그 광고는 말한다. ‘네가 취직하려면 지금 해야 하는 건 바로 이 수술이라고’. 당신이 운이 좋아 채용을 하는 ‘갑’의 위치에 있다고 가정하자. 이 광고는 당신에게 여성 채용 때 그녀의 얼굴뿐 아니라 엉덩이 생김새까지 고려 대상에 넣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메시지를 준다. 오늘날 한국에서 출세하는 건 심리적으로 너무 고단한 일이다. 이런 광고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능력이 보상받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상식에 부합하는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성 구직자의 미소와 걸음걸이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세계를 만들고 있다. 성형외과 관점에서 보자면 이 광고는 전혀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던 광고일 거다.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은 곧 강력한 동기 부여 방법이어서다.

젊은 여성들로선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취직을 하고 싶어? 외모를 더 가꿔야 할걸. ‘루저’ 남편과 결혼하고 싶진 않겠지? 그럼 더 예뻐져야 해. 보통 젊은 남자라면 TOEIC 점수도 그다지 좋지 않고 별로 안 좋은 대학을 나왔다면 ‘루저’가 되고, 그래서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식이다. 지하철 3호선의 수많은 성형외과 광고가 보여 주듯 ‘좋은 여자’에 대한 최대 기준은 외모다. 그러니 학업 못지않게 수술에 돈을 더 쓰는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에 지쳐 비참해지면 마지막 남은 돈은 ‘힐링’을 위해 쓴다.

세상 참 대단하다. 자, 나도 조금은 자본가적인 기질이 있다. 최근 맥주를 파는 회사에 투자했다. 위에서 언급한 성형외과 광고 메시지도 이해한다(좋아하진 않지만).

하지만 그런 광고에도 모종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 젊은 여성들이 ‘남자들이 나를 얼마나 섹시하다고 느낄지’를 주요 가치 기준으로 삼지 않도록 하는 게 경제적·심리적으로 사회에 얼마나 많이 도움이 될지 인식해야 한다.

여성을 외모로 판단하는 남성이라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 기준은 본인에게도 피해를 줄 거다. 그런 기준 아래에선 ‘남자는 돈이 많아야 하고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자가 되는 것보단 예뻐지는 게 더 쉽지 않은가. 서울의 버스·지하철은 공공서비스다. 서울시가 최종 소유자이자 관리자다. 서울시의 역할은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대개의 경우 서울시는 이 점에서 아주 잘하고 있다.

하지만 공격적인 성형외과 광고 게재를 허용하는 게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일까. 서울시 대중교통 광고부터 성형수술을 하는 건 어떨까.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학사)·맨체스터대(MBA) 졸업 후 2010년부터 서울에서 일하며 『코리아: 불가능한 나라』를 썼다. 한국어판은 이달 중 나올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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