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용어의 한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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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71년 안으로 모든 법률을 한글로 표기할 방침을 세우고 그 방법을 검토중이라 한다. 법제처는 정부의 한글전용방침에 따라 올해 안으로 대통령령의 한글화 작업을 끝낼 예정이며, 법률의 한글화 작업을 71년 안으로 모두 끝내기로 하고 그 방법에 관해 국회와 협의중이라는 것이다.
법제처는 법률의 한글화 작업의 방법을 검토해본 결과, 지난 48년에 제정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의 일부를 수정하여 한글화 작업에 대한 법적 근거를 삼을 예정임을 밝혔다. 법제처 당국자는 법률의 한글화 작업을 위해 국문학자와 법조계 인사들의 합동 심의를 거쳐 한문을 그대로 한글화할 경우, 오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법률용어 1천 70개 가운데서 이미 6백 7개를 한글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우리말을 표기하는데 한글 전용으로 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원칙론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또 일반 식자층 사이에도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우리는 그 어느 쪽이 옳다고 경솔하게 단정을 내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자체의 공용문서부터 한글 전용 방침에 따라 모든 공문서를 한글로만 표기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이상, 모든 「법률」이나 「법령」을 한글화하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국민적 입장에서는 법률의 한글화 작업이 졸속으로 흘러 법률을 준수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원래가 법률용어는 까다롭고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우리나라 법률용어는 주로 서구적인 개념을 일어로 번역한 것을 해방 후 지금까지 답습해서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이해가 어려운 것이 한 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난해성은 법률용어를 종전대로 한자로 표기해야될 이유는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한글로 법률용어를 표기하여 그 대중화를 기하는 작업을 벌이기로 한 이상, 우리사회의 생활감각, 법의식 등을 되도록 많이 살려 일반국민이 쉽게 알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 주기를 요망한다. 법률용어의 한글화가 용어의 평역를 기해 그 난해성을 다소라도 해소치 않는다고 하면 한글화 작업 자체의 의의가 크게 감소되고 말 것이다.
법률용어의 한글화 작업과 아울러 정부당국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경찰의 신문조서와 검찰의 기소장과 재판의 판결문도 그 표현을 대폭 쉽게 하는 한편, 한글로 표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직당국이나, 재판소가 작성하는 공문서는 그 대부분이 일제 때 사용했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 우리말로 옮겨 놓은 데 지나지 않으므로, 전문가를 제외하고서는 상당한 지식층이라 하더라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게끔 되어 있어 국민에게 적지 않은 불편을 주고 있다.
일제 때 경찰·검찰, 그리고 법정이 이처럼 알기 어렵고 장중한 문어체의 신문조서·기소장·판결문 등을 작성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관의 권위를 세워보겠다는, 일종의 관료적인 권위주의의 소산이라 볼 수 있다. 민주국가를 지향하는 오늘의 이사회에 있어서 이런 사고방식은 반드시 불식되어야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국민의 법률생활이 간단명료해질 수 있는 것이다. 법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을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만인이 알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고 만인이 알 수 있도록 법률을 적용함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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