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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사이의 화학적 친밀감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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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강일구]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국제무대에서 개인적 친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상당히 무시되고 있다. 외교 정책은 흔히 이익·힘·돈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국가의 지도자가 상대를 얼마나 잘 알고 서로 좋아하는가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할 수 있다. 개인적 친분은 주요 요인이다. 이것이 없다면 정상회담의 기자회견은 썰렁할 수밖에 없으며 만찬 식탁에는 침묵만 길게 계속될 것이며 양측 지도자들은 시계를 흘끔거릴 것이다. 판에 박힌 상대 측 연설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말이다. 하지만 친밀감이 있으면 정상회담은 길어지며 식사시간엔 가족과 아이들을 화제로 올리게 되며 기자회견은 부드럽게 진행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적 신뢰 수준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서로 좋은 느낌이 양국 관료들에게도 스며들어 양국 관계를 굳건하게 해준다. 두 지도자가 전화상으로 뭔가 합의했다면 관료들은 즉각 행동에 들어간다. 이 합의를 이행하는 게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개인적 희망을 좌절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친밀감이 없으면 양국이 합의한 정책안은 실현에 장애가 생기기 십상이다. 관료주의적 절차에 갇히게 되며 이를 풀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예컨대 지난 6월 미국 서니랜즈에서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을 보자. 미국이 여느 우방국을 초청할 때와는 대접이 달랐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캘리포니아주 샌 하신토 산맥에 자리 잡은 목가적인 장소에서 이틀에 걸쳐 총 8시간 동안 회담했다. 서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전 준비자료 없이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처럼 특이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목적은 시 주석과 개인적 우호관계를 맺는 데 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친화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이름 높다. 그는 첫 정상회담에 앞서 국가안전보장위원회의 참모들이 건네는 말씀자료 목록을 기피하는 일이 흔했다. 그 대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 영혼을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날 때 바로 이런 행동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만일 서로 통하면서 친밀감을 느꼈다면 부시는 참모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특별 방문을 제안했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볼 때 오바마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사이에는 친밀감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정말로 서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칸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오바마가 불평을 한마디 한 사건 뒤로 말이다. 이런 이미지는 관계 전체에 색깔을 씌우기 시작했다. 또한 이 사건은 오바마가 취임 4년이 넘는 지난 4월에야 중동의 이 맹방을 방문한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최근 정상회담에서 두 지도자가 조크를 날리고 재치 있는 농담을 하려고 크게 노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경쾌한 분위기를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중요하다. 언론으로 하여금 양국 관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글을 쓰게 유도할 뿐 아니라 이것이 전체적인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던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에선 오바마와 푸틴의 개인적 관계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았다. 미 대통령은 최근 푸틴에 대해 ‘교실 뒤편에 앉아 있는 지루한 어린이’라는 식의 표현을 썼다. 그는 G20 정상회담에 앞서 잡혀 있던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모스크바가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스노든은 NSA가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미국민을 감시한 사실을 유출한 인물이다. 러시아 언론 담당 대변인은 양국 지도자 간의 관계가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오랜 침묵 끝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관계는 전문직업인 간의 그것이며 세계적인 지도자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유추할 만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결론은 친밀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학적 친밀감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푸틴과 오바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데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결정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 모스크바는 유엔이 시리아 정부를 제재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방안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차단 중이다. 또 스노든의 망명 허용으로 인해 개인적 관계가 악화한 마당에 푸틴이 시리아에서 오바마에게 도움이 될 행동을 할 리가 만무하다. 두 지도자 간의 관계가 지금 같지 않았다면 결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최소한 양측에서 공개적이고 직설적인 냉소나 험담은 덜 나왔을 게 분명하다.

 지도자 간의 우의는 중요하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은 관료가 아니라 최고 지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안보담당 부보좌관을 지낸 엘리엇 에이브럼스가 설명한 대로다. “가장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것은 최고위 인사들인데 이들은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자기가 어디까지 발을 디딜 수 있는지, 진정한 정치적 한계는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무엇이 공정한 요구인지도, 무엇이 부당한 압력인지도 알고 있다. 이런 개인적 관계에서 친분은 정말로 극히 중요하다.”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와 시 주석과의 첫 만남에서 친분을 좋게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당선한 여성 대통령에게 호감을 가진 것이 분명하며 두 사람은 아마도 상대방을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대통령으로 봤을 것이다. 시 주석도 박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들 세 사람 간의 신뢰와 이해는 앞으로 마주치게 될 험난하고 예측 불가능한 바다를 항해하는 데 긴요하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