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금 거래소 왜 만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틴틴 독자 여러분, 정부가 내년 1분기에 금 현물시장을 개설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금은방이나 은행 등에서는 금을 사고팔 수 있는데 왜 굳이 따로 거래소를 만드는 걸까요. 또 금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클까요.

‘금이야, 옥이야’ ‘금쪽같은 내 새끼’ ‘시간은 금이다’…. 옛날부터 금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귀하게 여겼던 귀금속입니다. 지금도 금은 다양한 곳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죠. 우리가 흔히 아는 반지·목걸이 등 장신구 외에도 치아 보철, 전자기기, 의료 진단 및 치료 기기 등에도 금이 들어갑니다.

시간 지나도 가치 안 변해 투자용 각광

A 금은 글로벌 경제시장에서 주목하는 ‘금융자산’이기도 한데요. 바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금의 특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수단으로 금을 애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금 시세는 통화가치와 반대로 움직입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양적완화 기조에 힘입어 국제 금 시세는 3배가량으로 뛰었습니다. 시장에 돈이 넘쳐나 물가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돈값이 떨어질 테니 금을 사서 이를 막자는 겁니다.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이 같은 이유로 금을 일정량 이상 늘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공식 금 보유량은 104t가량으로 세계 34위 수준입니다. 1위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로 8133t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할 때도 사람들은 금을 사들입니다. 통화란 게 그 나라 사정에 따라 언제 휴지 조각이 돼버릴지 모르는 거니까요.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가 파괴됐을 때 나룻배로 한강을 건네주던 사공이 돈에는 꼼짝도 하지 않다가 금 한 덩이를 주니 당장 노를 저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일화도 있답니다. 올 들어서는 천정부지로 치솟던 금값이 급격한 약세를 보였는데요. 이 때문에 중국·홍콩 등 주요 금 유통 국가에는 ‘쌀 때 미리 사놓자’는 저가 매수 금 투자자들이 몰리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금은 ‘장신구용’ ‘산업재용’ ‘투자용’ 등 세 가지 용도로 나뉩니다. 상품이면서 돈이기도 한 금이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금의 용도 중 절반 이상은 산업재용으로 쓰입니다. 최근엔 투자용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지만 장신구용 수요는 금값이 과거에 비해 너무 많이 올라 위축됐다고 합니다. 예전엔 흔했던 ‘돌반지’가 ‘축의금’으로 대체돼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금은 주로 LS니꼬동·고려아연 등과 같은 비철금속기업이 구리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입니다. 사람들이 금은방에서 파는 장롱 속 금도 다시 재활용해 새 금으로 탄생하죠. 홍콩이나 해외 금융기관에서 금을 수입해 오기도 합니다. 수입금을 제외한 우리나라 한 해 금 생산량은 100~200㎏ 정도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1년에 약 43t의 금을 수출한다고 합니다. 수입한 금도 가공해 해외에 팔기 때문입니다. 금이 거의 나지 않는 나라가 ‘금 수출국’인 희한한 상황인데 벌써 5년째 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금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되셨을 겁니다. 그럼 정부가 추진하는 금 현물시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금은 수입금·제련금·정련금·밀수금 등 네 종류로 나뉩니다. 산업재 또는 투자 용도로 쓰이는 금은 주로 해외에서 수입하는 수입금과 제련업자의 광석 제련 과정에서 생산되는 제련금입니다. 유통 규모는 약 15~20t 정도로 대부분 합법적 경로로 유통됩니다.

우리나라 금의 60~70% 음성거래 추정

 이번에 정부가 금 현물시장을 거래하며 타깃으로 잡은 건 정련금 시장입니다. 틴틴 독자 여러분, 다들 한번쯤은 동네 금은방에 가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금을 사고파는 장면을 보기도 했을 텐데요. 그 금이 유통되는 시장이 바로 정련금 시장입니다. 왜 그 시장을 정부가 문제 삼았을까요. 여기서 이뤄지는 거래가 대부분 영수증 없이 이뤄지는 무자료 거래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금은방에서 거래 당사자 간 카드로 결제하거나 영수증을 주고받는 장면은 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무자료 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는 부가가치세 10%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영세업자 입장에선 ‘옆집도 무자료 거래를 하는데 안 하면 나만 손해’인 상황이 됐습니다. 이미 업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 거래 행태가 바로 ‘음성 거래’의 한 모습입니다. 어느 유통 과정에서든 세금계산서를 떼지 않고 현금 또는 실물 결제를 하는 경우 모두 음성 거래에 포함됩니다.

 현 정부는 이러한 금 음성 거래 시장을 ‘지하경제’로 규정지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전부터 공약한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은 다들 기억할 겁니다. 금 현물시장 개설 추진은 그 정책의 일환입니다. 정부가 직접 금 시장을 개설해 현재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금 시장을 양지로 끌어오겠다는 취지입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밀수금을 제외한 국내 금 유통 규모를 연간 100~110t 내외로 추산합니다. 이 중 음성 거래 규모가 55~70t입니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금의 60~70%가 지하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밀수금까지 포함하면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겁니다. 정련금의 음성 거래로 인한 부가가치세 탈세 규모가 연간 약 3000억원이라고 하니 정부에선 이 탈세를 막아 재정 살림에 보태고도 싶겠죠.

부가가치세 탈세 규모 연 3000억원

 금 거래소는 내년 1분기 즈음 한국거래소(KRX)에 만들 방침입니다. 금 실물업자들이 자연스럽게 거래소로 들어오도록 각종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자 중개를 통해 주식 거래처럼 금을 거래할 수 있게 됩니다.

 금 현물시장 성공의 관건은 ‘음성 거래가 얼마나 거래소에 들어올 것인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시장 개설을 앞두고 실물 사업자 등 시장 관계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합니다. 무엇보다도 영세사업자들은 음성화된 부분이 수면 위로 드러나 문서상 금 매출이 늘어나면 세무조사를 통해 세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전문가들은 법인세 감면 등 현재 정부가 제시한 세제 혜택 방안은 이미 예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로 큰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중개업무를 맡을 금융투자회사들도 최근 업계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 측은 금 시장과 연계된 다양한 파생상품 개발을 독려하는 등 시장 활성화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금 시세는 주식과 달리 변동성이 크지 않아 주식시장처럼 거래가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금 현물시장, 음성화된 시장을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과정이 산 넘어 산이네요.

홍상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