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명 대 3만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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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진아들의 중학진학을 포기케 하라.』 이런 매정한 공문을 띄우면서 당국자는 과연 어떤 표정을 했을까….
학력지진아들은 물론 보통 아동들과 함께 가르칠 수는 없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그렇다면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지진아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따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을 때에는 80만명을 위해서 3만여명은 마땅히 희생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올바른 민주교육의 이념에도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IQ70이하를 지진아로 치는 기준에도 의문이 간다. 서구에서는 어떠한 지능 테스트로써도 창조력을 측정할 수는 없다하여 새삼 지능 테스트의 효용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된지 벌써 오래이다. 하물며 우리 나라에서처럼 지능 테스트의 신빙도 자체가 문제시되고 그 테스트가 이상적인 조건하에서 실시되지 않고 있는 상황아래서는 더군다나 문제가 크다.
이런 테스트에서 평점 70과 80사이에는 그리 큰 차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그러한 테스트 결과에 대해서 백%의 신뢰도가 있다하더라도 80만명을 위해서 3만명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에는 3만명이 희생되면 80만명의 교육은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실학파로 유명한 박지원의 저서 『담총외기』에는 천자문 교육을 비판한 대목이 있다. 『하늘천 따지(천지)』라는 지학에 관한 구절 바로 다음에 『가물현 누르황 (현황)』이라고 색채에 관한 말을 붙여서 가르친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비약과 강제에 찬 학습방법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해롭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18세기 때의 일이지만, 막상 오늘날에 있어서도 우리가 그 천자문식 교육법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는 의심스럽다.
3년 반에 걸친 조사연구 끝에 최근에 발표된 미국 아동교육에 관한 『카네기 보고서』는 대부분의 학교가 너무 억압적이며, 따분하고 아동들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쏟기에는 너무 판에 박은 교육법을 쓰고 있어,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복도 없고, 조회도 없고, 청소당번도 없고, 콩나물 교실도 없는 미국학교가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 견주어 본다면 우리네 아동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사람은 모든 것에 낙관적이어야 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키워져 나간다는 사실을 저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좀더 좋은 교육이라면 얼마나 더 많은 우수 학생들이 자라날수 있었겠는지? 이것은 단순히 학력지진아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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