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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큐를 두려워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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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두 명의 사상가를 빼고 20세기 중국을 논할 수 없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루쉰(魯迅)이다.”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중국의 지성세계가 인정한 말이다. 봉건질서를 무너뜨린 둘의 중국 혁명사상에 대한 외경이다. 한데 요즘 중국에선 루쉰 지우기가 한창이다. 바로 엊그제다. 중국 초·중·고 교과서 대부분을 발행하는 인민교육출판사가 올 9월 신학기 중1 어문(국어)교과서에서 루쉰의 산문 『연(風箏)』을 빼 버렸다.

 루쉰 산문의 백미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 작품이 빠진 이유는 석연치 않다. 다만 출판사나 일부 교육계 인사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배우길 싫어한다”고 토를 달았다.

루쉰의 대표작인 『아큐정전(阿Q正傳)』이 빠질 때도 같은 핑계가 있었다. 상하이시는 10년 전에, 베이징시는 6년 전에 각각 중·고교 교과서에서 이 작품을 삭제했는데 당시 이유도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한다”는 거였다.

실정이 이러니 1920년 이후 130여 편이나 교과서에 실렸던 그의 작품은 이제 15편 안팎으로 줄었다. 중국이 자부하는 사상가요 혁명가, 그리고 가장 세계적인 작가라는 루쉰이 왜 이런 푸대접을 받는 걸까. 정말로 학생들의 학업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파격조치인 걸까.

 그 진짜 이유를 알려면 작품의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5년 발표된 『연』은 어린 시절 루쉰이 연을 못 날리는 동생을 괴롭혔던 얘기다. 어린 시절 회고를 통해 동생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미안함을 담았다. 그러나 진짜 루쉰이 말하고자 했던 건 부당한 형의 핍박에 저항하지 못했던 동생, 그리고 동생을 그렇게 만든 가부장적 봉건 위계질서, 더 나아가 봉건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다.

 한국 학생들에게도 친숙한 『아큐정전』도 마찬가지다. 『연』보다 2년 전 나온 이 소설은 ‘아큐’라는 최하층 농민공을 통해 본 당시 사회의 모순과 비리 고발이다. 특히 모욕을 받고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도둑으로 몰려 총살당하는 ‘아큐’의 운명을 통해 중국 민초의 우매함을 통렬하게 질타하고 있다.

 그리고 9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 사회는 부패와 인터넷 유언비어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패는 감시받지 않는 봉건권력을 척결하자는 것이고 유언비어 단속은 사회불만 확산을 막으려는 포석이다. 역으로 루쉰이 고발하고자 했던 사회의 봉건성과 저항하지 못하는 국민의 우매함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중국은 봉건과 핍박의 상징이었던 ‘아큐’가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돌아올까 걱정하는 것 같다. 쉬둥보(徐東波) 사오싱(紹興) 루쉰기념관 부관장의 일침이 인상적이다. “감히 쓰지 못하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에게, 국가에 미래가 있겠는가. 이게 루쉰의 정신이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