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의 정세판단 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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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은 이른바「닉슨·독트린」의 이름아래 거의 일방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군철수 계획을 세운바 있고, 또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음은 이채 여러모로 분명해졌다 할 것이다. 그러는 데는 미국으로서도 그 나름대로의 정세판단에 입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최근의 외신보도는 이와 같은 정세판단의 성격에 대해서 우리로서는 좀처럼 납득키 곤란한 내용을 전하고 있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지난 8월27일 뉴요크·타임스지는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 동기로 ①한국군의 군사력이 개선됨으로써 미군 2개 사단의 주둔이 이제 필요 없게 됐다 ②가까운 장래에는 북괴가 어떤 심각한 군사적인 표현을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③소련이나 중공은 북괴의 남침을 고무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등으로 요약되는 전반적인 상황판단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또 한가지 예로서는 서명한 극동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미국의 저널리스트「리처드·해러란」씨도 70년 10월호『퍼시픽·코뮤니티』(계간)지에서 미국은 아시아 철군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서 ①아시아 제국 자신에 의한 자주국방과 집단안보체제의 결성·촉진 ②중공의 적의 감소 ③계획된 철수로서 미국 내 고립주의가 급속히 표면화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판단이나 정세분석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제국의 자체 상황판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1일 미국의 유력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지가 보도한 것을 보면 주한 미군의 감축을 둘러싼 정세판단에 있어 한-미간의 이견이 역력히 나타나 있음을 보도했다. 즉 그 골자를 보면『미국은 북괴괴수 김일성이 재침할 능력을 못 가지고 있으며, 또 그와 같은 위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 측은 그 반대로 그에게는 재침할 능력이 있고, 또 실재로 그러한 침략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어떤 사상에 대한 정세판단을 합에 있어서는 주권 적으로 볼 때와 객관적으로 볼 때, 그리고 견해에 따라 그것이 장관 또는 비관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닉슨·독트린」이나 아시아 철군 계획을 전기한 정세판단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일한 평가가 될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결과를 조래 할 것이라는 것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총체적으로 아시아 공산세력을 볼 때 그들은 적화혁명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침략전쟁을 호언하고 있으며 계속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괴의 군사력이나 위협의 변수라고 할 수 있는 북괴의 침략야욕은 지난 25년에 걸쳐 강화됐을 망정 조금도 완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군 감축 등으로 한국이나 아시아에서의 군사력의 균형을 깨칠 때 그것은 공산 측의 침략 증강이라는 결과를 초래 할 것이라는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설혹 현 사태를 낙관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빼놓을 수 없는 중대한 요소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그것은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강력한 방위 정책과 군사력의 전개로써 간신히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동적인 정세를 과대 평가해 가지고 아시아 방위전략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 힘 안들이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연히 정책이나 전략을 바꾸어 위험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미국은 대아 또는 대한 정책에 있어서 잘못된 판단으로 위험을 자초한 일이 있었다. 지난날의 국공합작 협상의 실패라든지 또 6·25 직전의 주한 미군철수로 북괴에 침략의 기회를 준 것 같은 것은 그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을 둘러싼 정세판단에 관한 한, 또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전략전술에 관한 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옳을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만이 미국의 입장에서도 유리한 것이 될 것이다. 또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자신도 바라는 각국의 자주국방이나, 지역집단안보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기반구성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 없이 그것을 조급히 서두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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