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전100패 '똥말' 차밍걸, 위대한 은퇴 … 마주 "딸 시집보내는 맘 … 여생 편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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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주마로는 부족했지만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달려온 `차밍걸`을 마주 변영남씨가 쓰다듬고 있다. [중앙포토]

100전 100패. 한국 경마 사상 최다 연패 기록을 세우고 있는 차밍걸(8세 암말)이 은퇴하고 승용마로 다시 태어난다.

 경주마 차밍걸은 오는 29일 서울경마공원에서 101번째 경기를 마치고 현역에서 물러난다. 2008년 데뷔 이후 한 경기에서도 우승하지 못했다. 29일 경주에서도 우승은 사실상 불가능해 101연패라는 기록을 남길 게 확실시된다.

 승부를 두고 베팅하는 경마에서 성적이 나쁜 말은 가차없이 도태된다. 하지만 차밍걸이 부진한 성적으로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말보다 빠른 회복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보통 경주마는 1개월 보름 만에 한 번 정도 출전하지만 차밍걸은 1개월에 두 번 경주에 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차밍걸을 데리고 있는 변영남(70) 마주는 “우승 상금을 벌어주지는 못해도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달려 꼬박꼬박 출전 수당을 받았다. 잔병치레도 안 해 손해도 입지 않았다. 열심히 달리는 모습 때문에 내가 배운 게 더 많다”고 말했다. 1등을 못해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운이 솟는 기분이라며 차밍걸을 응원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진작 사라졌어야 할 능력없는 똥말’이라는 혹평과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위대한 똥말’이라는 찬사를 차밍걸은 함께 받았다.

 은퇴 이후 진로도 정해졌다. 경기도 화성시 궁평목장에서 승용마로 거듭난다. 앞만 보고 달렸던 경주마에서, 마장마술·장애물 비월 등을 하는 승용마로 제2의 도전에 나서는 셈이다.

류태정(46) 궁평목장 대표는 “경주마로 능력은 부족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밍걸이 전국체전 등 승마 대회에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8세는 경주마로는 노쇠하지만 승용마로는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나이다.

 변 마주는 “딸을 시집 보내는 기분이다. 차밍걸이 경주마를 그만둔다는 게 아쉽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다. 경주마로는 1등을 못했지만 승마에선 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사람들이 매번 패하던 그 말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떳떳하게 답하고 싶었다. 육군사관학교에 군용마로 기증할지, 장애인 치료를 위해 재활승마 단체에 기증할지 고민했지만 지금껏 열심히 뛰었으니 승마용 말로 도전하면서 여생을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목장으로 보낸다”고 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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