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는 핵심만 토론도 짧게 … '왕실장'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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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만 보고하세요.”

 5일로 임명된 지 한 달을 맞는 김기춘(얼굴)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74)에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검찰총장을 지낸 3선 의원 경력을 갖고 있어 취임 때부터 ‘왕실장’이라고 불렸다. 예상대로 특유의 스타일로 청와대 비서실을 한 달 만에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속도’를 중요시하는 게 특징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한다.

 익명을 원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일 “김 실장이 회의를 주재할 때 ‘짧게 보고하라’고 해 보고시간이 줄었고 그 시간에 토론을 하는 빈도가 늘어나게 됐다”며 “그러나 토론도 짧게 끝내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평소 매주 수·금요일 오전에 수석 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 실장은 회의에 기본적인 지침을 적은 노트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며 “다소 올드 패션한 느낌도 나지만 맥을 잘 짚고 요점을 잘 잡아내 회의를 마치고 나면 ‘예스’인지 ‘노’인지 결론이 명확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했다.

 현안 보고를 하러 집무실을 찾은 한 비서관에겐 “잘한 것만 보고하지 말고 잘못한 것도 보고하세요”라고 지시해 각 비서관실에 비상이 걸린 적도 있다고 한다. 잘한 것은 부풀리고, 잘못한 것은 숨기기 마련인 조직문화의 특성을 간파한 셈이다.

 ‘비서는 입이 없다’는 원칙도 자주 언급한다. 스스로 언론과의 접촉도 거의 없는 편이다. 최근 여야 영수회담과 관련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민주당에 5자(대통령, 당 대표 및 원내대표) 회담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 외에는 공개발언을 한 차례도 하지 않고 있다.

 야권에선 김 실장이 검사 시절 3·1 명동 구국선언(1976년), 민청학련 사건(74년) 등을 수사하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한 전례를 거론하며 이번에도 김 실장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관련 수사를 통해 ‘신공안 정국’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하고 있지만 김 실장은 대응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직원들에게도 이 사건과 관련해 “어떤 관심도 표명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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