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깃든 선물이 묵은 섭섭함 녹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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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장인 홍석기(34·서울 영등포구)씨는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평소 바쁜 업무 탓에 아내를 서운하게 한 점이 많았던 홍씨는 이번 기회에 점수를 딸 생각이다.

#2 직장인 이주현(30·경기도 성남시)씨는 결혼 후 첫 명절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임신한 이씨를 배려해 대구에 계신 시부모님이 이번 명절은 각자 보내자고 하셨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은 섭섭할 것 같기 때문. 이씨는 요즘 양가 부모님께 보낼 선물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가족·연인·이웃 사이의 정을 전하려는 손길이 분주하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지난 2월 서울지역 20세 이상 성인남녀 37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성인 1명당 지출액은 평균 93만3531원. 이중에서 액수가 가장 큰 항목은 ‘선물비용’으로 평균 24만4987원이었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어 지출이 다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명절 선물 지출은 늘지만 명절 증후군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본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망설이는 것은 물론 의사소통이 원만하지 않기 때문. 주부 박가영(36·인천시 계양구)씨는 “1년에 두 번 있는 큰 명절에 생신, 어버이날 등까지 선물을 챙기려면 고르기도 어려운데 , 막상 드리면 맘에 안 들어 하시는 눈치”라고 토로했다.

 듀오라이프컨설팅의 이미경 총괄팀장은 “선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인데,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총괄팀장은 “명절이 끝나는 3월과 10월의 이혼율이 다른 달보다 높다는 통계가 있다”면서 “지난해 9월 20일 발표된 11번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아내가 10명 중 9명이며, 한국워킹맘연구소와 맘스다이어리 설문자료에서 ‘명절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한 남편이 10명 중 9명이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배려와 관용으로 이런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나은영 교수는 “‘정’은 오랫 동안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생기는 감정이며, ‘한’은 장기적인 좌절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할 때 생기는 것”이라면서 “관계의 부재 내지는 어긋남이 오래 방치돼 소외를 낳고 소외가 쌓여 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나 교수는 “상대의 자라온 환경, 생활 방식 등을 고려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면서 “금액을 떠나 상대의 공감을 사는 선물은 한을 녹여내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나 교수는 “구세대는 대놓고 좋아하면 체면이 상한다고 생각해 겉으로는 타박을 주면서 속으로는 기뻐하기도 한다”면서 여러 세대가 모이는 추석에는 세대 간의 커뮤니케이션 양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가정문제상담소 전인중 소장은 “명절의 의미를 잘 알고, 또 스스로 진정성을 갖고 명절을 맞이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이라면서 “명절 한 순간을 통해 가족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하기보다 평소 상대방과의 꾸준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배은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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