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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명훈의 음악헌신 2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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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정명훈(60)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손은 단단하고 따듯했다. 며칠 새 세 번째 악수다. 이달이 가기 전에 몇 번쯤 더 하게 될 듯하다. 기자회견, 발표회, 연주회가 줄을 섰기 때문이다. 손을 많이 쓰는 지휘자는 장수(長壽) 직종으로 꼽히는데 그의 에너지 넘치는 최근 행보를 보면 정 감독이 오래 살 것이란 느낌이 온다.

 지난달 29,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특별음악회는 정명훈과 함께 하는 올가을이 특별하리라는 전주곡이었다. 서울시향이 도이치그라모폰(DG)과의 일곱 번째 발매 음반 녹음을 위해 들려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9번은 올해의 연주로 꼽을 만한 감동을 불러 왔다. 음악 삼매경에 빠진 객석은 침묵에 잠겨 있다가 지휘대의 정명훈이 돌아서자 그제야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만한 연주 기량을 지닌 오케스트라를 우리가 지니게 됐구나 하는 기쁨의 환호성도 터져 나왔다.

 2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5층 서울시향 연습실. 젊은 지휘자 6명을 지도하는 ‘지휘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는 정 감독은 잔뜩 긴장한 후배들을 아버지 같은 푸근함으로 격려했다. 자신의 지휘봉을 넘겨받을 차세대 지휘자를 그는 때로 유머로, 때로 직설로 지도했다. 클래스에 참여한 백윤학(38)씨는 “정 감독이 하신 한마디 ‘디프 사운드(deep sound)’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했다.

 정명훈 감독은 이날 오전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 ‘ECM 뮤직 페스티벌’ 기자회견에서 오래 함께 해온 음악친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털어놨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와 함께 하는 7일 ‘위대한 만남’ 콘서트를 그는 ‘특별한 시간’이라 불렀다. 세계 음악계에서 한국 출신 지휘자로서 홀로 싸워온 40년 세월을 보내고서 그는 “이제야 젊은 지휘자 수준을 벗어났다”고 표현했다.

 2년 전 연봉 액수를 놓고 서울시와 잡음이 일었을 때 정 감독은 “언론에 발표된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으며,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음악 발전과 후진 양성을 비롯한 서울시향의 발전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과의 다짐과도 같은 그 약속을 정 감독은 차근차근 지켜가는 중이다. 그가 부임한 뒤 외국인 단원 비중이 너무 높아졌다든가, 그의 역량에 의존하는 만큼 그가 떠난 뒤의 시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정 감독이 조련해낸 서울시향의 빛나는 모습을 보면 단단하면서도 따듯한 그의 손이 떠오른다. 시련의 1라운드 뒤에 헌신의 2라운드로 판을 뒤집은 그의 리더십이 올가을 음악을 타고 흐른다.

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