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어린이는 설 땅이 없다|현임순<서울 사대부국 교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물이 깊게 괸 길가의 웅덩이에 어린이 둘이 빠져 목숨을 잃었다. 이 살인 웅덩이는 어떤 사람들이 흙을 퍼가느라고 팠으나 메우지 않고 버려 두었던 것이며, 여기에 장마철로 빗물이 괴어 있던 것이 사고원인으로 밝혀져 어른들의 무성의와 잘못이 어린 생명을 뺏은 결과를 빚은 것이다.
언제인가 오래됐지만 제재업자가 길가에 원목을 쌓아 놓았었다. 놀이터 없는 어린이들이 이 원목더미에서 놀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바람에 죽고, 다친 큰 사고를 낸 일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대체로 가정마다 자식들을 소중히 어기는데는 다름이 없으나 어린이들이 가정의 문턱만 나서면 도대체 어린이로서 소중히 어겨주지 않는 것이 참변의 원인이 되고 있다. 건널목에서 폭주 운전사에 의해 어린이가 치어죽은 사고가 난 뒤에라야 「일단정지」간판을 내거는 등 언제나 어린이의 보호는 사고에 뒤따라 취해지고 있을 뿐 앞질러 배려를 한 적이 드물다. 국민학교 앞에 육교가 생긴 것이 많지만 이것도 여러 어린 생명이 희생된 뒤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어린이들은 복잡한 사회조직 안에서 자위능력이 없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또 인간 관계에서 이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무슨 일 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이 보호의무의 태만은 방임 또는 무관심으로 나타났다가 사고가 난 뒤에야 법석을 떠는 일이 흔하다.
한 어린이의 죽음에서 얻은 교훈은 수만 수천 어린이의 안전한 보호를 위해 길이 시책으로 이어지는 마음가짐이 아쉽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