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이크」와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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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펜」대회가 열리는 동안 「존·업다이크」씨는 각 신문마다 가장 떠들썩하게 다룬 작가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천단강성씨와 임어당 박사와 「업다이크」씨가 안 왔더라면, 이번 대회가 어쩔 뻔 했을까 할 정도로 이 세 사람은 크게 「클로스업」이 됐었다.
그 「존·업다이크」씨와 간단한 대화 자리를 어느 잡지사가 마련하여 나는 「펜」대회가 끝난 이튿날인가, 장왕록씨를 사이에 두고 만나게 되었다. 만나는 장소가 하필이면 조선호텔이었다. 나는 억수로 비가 퍼붓는 속을 조선호텔까지 찾아갔다.
「업다이크」씨는 키가 크고 서글서글하고, 첫인상부터 소설 쓰는 사람답게 소박하고 친근미가 있었다. 나는 만나자마자 말하였다.
『조선 호텔로 당신을 만나러 오면서 생각하니까, 당신이 주인이고 내가 손님 같은 착각이 드는군요.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펜」대회가 아니었더라면 조선 호텔에는 내 평생에 한번도 못 와 보았을는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로 이런 곳은 생소하지요. 한국 작가들, 일반이 대체로 다 그럴 것입니다.』
그는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하더니, 『저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요란한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도 한때 고생을 무척했어요.』

<한때 고생을 했다, 안했다의 문제가 아닐터인데 내 얘기의 뜻은…>이런 생각으로 그를 쳐다보니, 그도 쓰디쓰게 웃고 있다.
이런 식의 내 얘기가 후진국 「콤플렉스」로 보이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한참 동안 문학 얘기를 주고받다가 이번에는 「업다이크」씨 쪽에서 불쑥 물어왔다.
『당신은 이 나라의 운명이나 민족의 운명, 나라의 분단 상태에 깊은 관심을 갖는 쪽입니까?』하고.
『물론이지요. 내 경우만 해도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은 지금도, 북한에 있습니다. 분단은 당신들이 보듯이 그렇게 추상이 아니라, 이토록 절절한 것이지요.』
그는 놀라는 얼굴이 되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우편 연락 정도는 있습니까?』
『없읍니다!』
그는 일순,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
무슨 말인지 혼자 중얼중얼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말하였다.
『관심을 가진대서 별 수가 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쪽에서는 작가로서 설 수 있는 기본요건과 관련이 됩니다. 단순히 <잘 쓴다, 못 쓴다>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요. 이 나라에는 당신과 같은 「사일런트·더티·제너레이션」이 설자리는 처음부터 없는 거지요. 참 당신은 어떻습니까. 「사일런트·더티·제너레이션」에 그냥 자족하고 있는 편입니까,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의식이 있는 쪽입니까?』
『창피한 느낌이 있는 쪽이겠지요, 물론.』하고 그는 덧붙였다.
『작가도 정치적 상황에 외면만 할 수는 없지요. 최근의 미국도 점점 그런 압력이 거세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하는 소리인지, 정말로 그러는 소리인지 「업다이크」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호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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