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농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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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누구나 현대문명의 특징을 도시생활에 있다보고, 도시생활의 문제들을 모두 현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주택난이나 고층건물, 그리고 이에따르는 문제들은 고대 로마시에도 있었고 중세말의 런던시에도 있었던 것 같다.
가령 중세말의 런던에서도 주택지는 한정되어있는데 인구는 격증하여 땅값이 치올랐다. 그래서 단층집이 2층이 되고, 그위에 또 한층을 더 올리고…. 이래서 4, 5층짜리 고층 집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한층씩 올려 증축할 때마다 역피라미드형으로 조금씩 길가로 늘려나갔다. 그래서 위층에서 물을 버리면 길 한가운데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하수도 시설이 없던 때라 길가 가운데를 걷다가는 언제 오물세례를 받을지도 몰랐다. 신사가 숙녀와 길을 걸을 때 길가로서는 에티케트는 이래서 생겨났다. 좁은 길에서 오가는 사람끼리 서로 비켜설 때 왼쪽으로 도는 에티케트는 칼을 차고 다니던 때의 버릇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렇게보면 에티케트란 아무리 형식적인 것 같이 보여도 모두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잘 쓰던 인사말에 『진지 잡수셨읍니까?』가 있다. 언제부터 이런 인사말을 쓰게됐는지는 분명치않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를 서글프게 만드는 에티케트도 없다.
쌀이 흔하고 밥먹기가 쉬웠다면 그런 인사말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굶지않았느냐는 욕으로도 들릴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농지본이라 하여 거의 모든 백성이 농사만을 짓고 있을 때에도 쌀밥 먹기는 그처럼 어려웠다.
그러나 요새는 『진지 잡수셨읍니까?』라는 인사말은 쓰지않는다. 시골에서도 잘 듣지 못한다. 그렇다고 쌀이 흔해진 것은 아니다. 해마다 외미를 도입해도 쌀난리를 한두차례씩 겪는다. 이농자의 수도 날로 늘어만간다.
그만하면 쌀농사도 수지가 맞아 농촌의 살림도 펴갈만한데 그렇지않은 까닭이 어디 있는지를 알 길이 없다.
오늘은 권농일.
대평소를 하루 내내 분다고 1년 농사가 잘될 것도 아닌게 그저 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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