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의약품 공급 거절 … 녹십자에 시정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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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공정거래위원회는 20일 독점 생산·판매 의약품인 정맥주사용 ‘헤파빅’을 공급해 달라는 도매상의 요청을 부당하게 거절한 녹십자에 시정명령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헤파빅은 간이식 환자가 B형 간염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는 혈액제제 의약품으로 국내에 대체재가 없다. 헤파빅을 써야 하는 국내 환자는 간이식 생존자 8042명과 대기자 6125명을 합쳐 모두 1만4167명에 달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0년 2월 의약품 도매상 T업체는 서울대병원 헤파빅 구매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돼 2011년 4월까지 1년간 납품 계약을 맺었다. 이에 녹십자 측에 제품 공급을 요청했으나 “물량이 한정돼 있어 추가 공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납품 지연에 시달리던 T사는 결국 다른 도매상에서 납품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헤파빅을 구입해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T사는 지연 배상금, 낙찰가와 다른 도매상에서의 구매가격 차이 등으로 1억50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

 도매상은 이런 피해를 보았지만 조사 결과 녹십자는 추가 공급 여력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위는 녹십자가 이로 인해 부당이득을 얻지 않았고, 거래 상대방의 피해가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해 시정명령만 내리고 과징금은 부과하지 않았다. 이성구 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장은 “이번 제재는 독점적 지위에 있는 제약사가 대형병원에 의약품을 공급할 때 특정 도매상 위주의 거래로 약값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공정위가 (이번 사안에 대한) 의결서를 보내오면 내용을 검토한 후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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