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구리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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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결승 3국>
○·구리 9단(1승1패) ●·이세돌 9단(1승1패)

제4보(36~51)=이세돌 9단이 흑▲로 한 칸 뛴 장면인데요, 이 수는 중앙 흑을 보강하는 뜻도 있고 우변 백을 공격하는 뜻도 있지요. 구름처럼 흘러가는 그런 수로 보면 됩니다. 여기서 구리 9단은 36, 38의 맥점을 구사하여 즉시 근거를 잡았습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수법이지요. 결승 최종국에 임하는 구리의 승부 호흡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느끼게 해줍니다.

 평소의 구리 9단이라면 ‘참고도1’ 백1로 뛰어나갔을 겁니다. 백1의 한 칸은 막막한 수법이고 동시에 강력한 수법이기도 합니다. 백도 근거가 없습니다만 중앙 흑도 둥둥 떠 있고 ●도 고립돼 있지요. 따라서 이후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귀신도 모르는 거죠. 그러나 구리는 이런 구름 잡는 흐름 대신 42까지의 ‘명확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편하고 안전합니다. 대신 흑도 단단해져서 편안한 건 마찬가지로군요. 바둑이란 이런 겁니다.

 여유가 생긴 흑은 43, 45로 씌워 이쪽을 정비합니다. 47로 씌웠을 때 구리의 48이 다시 한 번 쟁점으로 떠오릅니다. ‘참고도2’ 백1로 뛰어나간다면 바둑은 혼돈으로 한 발짝 내딛는 거지요. 흑백이 서로 차단하고 있어 바둑이 위태롭고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구리는 이 길을 피해 48로 실리를 챙겼습니다. 이 자리는 실리의 요소이고 근거의 요소라 흑이 두어도 좋은 자리지요. 그러나 흑도 49, 51의 봉쇄가 기분 좋습니다. 51로 꽉 막은 수가 참으로 두텁지 않습니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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